본문 바로가기
冊 it now

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 트라비아타

by 푸른바람꽃 2012. 9. 2.
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 트라비아타 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 트라비아타
이부키 유키, 김해용 | 예담 | 20120820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2012년의 여름도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득한 바람은 턱 밑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게 만들었고, 그러자 문득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도 이렇게 정신없이 흘려보내고 말았다는 생각에 공허함이 밀려왔다. 이제 곧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불면 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겠지...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마음 한 가운데로 휑한 바람이 지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직은 이 여름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푸른 신록과 눈부신 햇살이 내 시선을 잡아 끌었던 <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 트라비아타> 덕분에 그 공허함이 잠시나마 따뜻한 온기로 채워짐을 느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사시던 집을 정리하기 위해 도쿄에서 바닷가 마을 미와시로 잠시 내려온 테쓰지. 그러나 어머니의 유품 정리는 듣기 좋은 이유였고, 사실 그는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일상 생활이 힘들 지경에 이르자 도망치듯 이 시골로 내려온 것이었다. 외도하는 아내, 하나 뿐인 딸과의 단절, 거기다 유일한 가족의 상실은 테쓰지를 공황상태로 몰고 갔다. 일단 어머니의 집으로 내려왔는데 그는 여전히 먹고 자는 단순한 일들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테쓰지의 앞에 기이한 소문을 달고 다니는 여자 키미코가 나타난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는 그에게 키미코의 관심은 성가신 간섭에 불과했지만 키미코 역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아픔을 간직한 여자였다. 그렇게 서른 아홉 동갑 내기 두 사람은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클래식 음악, 그 중에서도 '라 트라비아타'였다.

 

아직 '라 트라비아타'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없지만, 책에 등장하는 '축배의 노래'와 같은 주요 아리아들은 자주 들었다. 워낙 유명한 오페라인데다 귀에 친숙한 이 아리아 역시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페라는 쉽게 친해지기 힘든 벽이 있어 아직까지 즐기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키미코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좋아했던 클래식을 통해 죽은 아들을 조금 더 가깝게 느껴보려는 그녀의 노력이 마음을 울린다. 그리고 자신과는 달리 억척스런 삶을 살아온 키미코가 안쓰럽고, 또 자신을 도와주려는 그녀가 고마워서 테쓰지는 키미코의 클래식 선생님을 자처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삐걱거리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 화음을 이루는 것처럼 서로에게 동화되어 가는 모습은 바닷가 마을의 순풍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살아가며 상처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 우리는 그 상처를 애써 무시하며 아프지 않은 척 살아간다. 그러나 고통스럽더라도 벌어진 상처를 돌봐야 그 자리에 새살이 돋고 그 상처가 아물어 치유가 되는데 말이다. 테쓰지의 상처는 인생의 무력감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고 이끌어나가지 못했던 그 우유부단함이 부메랑이 되어 그의 삶을 헤집어 놓았고, 키미코의 상처는 학력에 대한 열등감과 자신감 부족 등으로 말미암아 가족의 죽음마저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그릇된 죄의식이 그녀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런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사랑을 이뤄나가는지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따뜻한 물이 서서히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음악과 자연, 맛있는 음식, 무엇보다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치유의 힘을 가졌는지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작품이 이부키 유키의 장편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이 책의 글이나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그녀의 <49일의 레시피>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 읽지 않았지만 <49일의 레시피> 또한 훈훈한 감동과 사랑이 오감을 자극하는 책이리라. 여름이 끝나기 전, 좋은 작가의 멋진 작품을 만나게 되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冊 it no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자들의 도시여행  (0) 2012.09.02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  (0) 2012.09.02
그곳에선 누구나 사랑에 빠진다  (0) 2012.08.26
미국 서부 여행  (0) 2012.08.20
최소한의 사랑  (0) 2012.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