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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by 푸른바람꽃 2012. 9. 19.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양장)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양장)
김연수 | 자음과모음 | 201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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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마치 주술에 걸린 듯 이 한 문장에 매혹돼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 소설가 중에서도 유독 편애하는 작가 김연수의 신작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말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의 소식을 출간 이후에야 들었는데 2011년 여름부터 올 여름까지 한중 문예지에서 동시 연재됐었단다. 그때는 <희재>라는 작중 카밀라의 한국 이름이 제목이었지만 연재 종료 후 수정을 거쳐 지금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란 제목으로 최종 완성되었다. 그러나 국내 독자에게 이 작품이 더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평일 저녁 8시에 EBS 라디오를 들으면 국내 미발표 신작을 낭독해 주는 프로그램 “라디오 연재소설”이 방송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7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 소개된 것. 글이 아닌 낭독자의 목소리로 독자들과 먼저 만난 셈이다. 방송 당시에도 청취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는데 책으로 읽게 되자 저절로 방송을 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다시듣기가 제공되지 않는다.

 

그래서 글자에 더욱 집중하며 책을 읽어 나갔는데 이야기는 생후 6개월 쯤 미국으로 입양된 26세의 카밀라(희재)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총 3부로 나눠져 있고, 1부에서는 카밀라의 시점으로 몇 가지 단서를 모아 엄마를 찾아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카밀라에게도 백인 양부모가 있었지만 입양아들의 삶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녀 역시 온전히 한 가족이라는 정서적 유대감을 갖고 살았을 리 만무하다. 또한 지금껏 나란 존재가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으며, 또 나를 세상에 있게 한 그들은 누구인지, 왜 자신이 낯선 이국에서 자라야만 했는지 궁금증을 가지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마주한 친모에 대한 소문과 억측, 증언들은 엇갈리고 카밀라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2부에서는 카밀라의 친모 지은의 이야기가 펼쳐짐으로써 극의 재미를 더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인데다 시점도 카밀라에서 지은으로 변화되어 독자의 입장에서는 좀 혼란스럽긴 하지만 이런 구성도 김연수만의 필력으로 잘 이어붙여 놓은 느낌이다. 지은이 카밀라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전후 사정과 그녀의 고단했던 과거 등은 카밀라가 발견하고 전해들은 지은에 대한 이야기와 교묘하게 교차되면서 커다란 그림으로 완성되어 나간다.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p.201

 

카밀라와 지은의 인생을 압축한 것 같은 이 문장은 책을 덮은 뒤에도 자꾸 곱씹어졌다. 작가가 굳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구성한 것도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나’와 ‘너’ 사이의 심연을 건너 카밀라는 지은을 만난다. 그녀들의 만남이 현실이든 아니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작가 김연수가 쓰지 않은 그 이야기를 알기에 일독으로는 왠지 부족한 느낌이다. 다 읽은 지금도 긴 여운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나가 카밀라와 지은의 그 바닷가에 나는 홀로 서 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