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레드와 블랙!
단번에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적인 표지임이 틀림없다.
파올로 코엘료의 신작 <승자는 혼자다>가 네이버에 처음 연재되기 시작하자 마자 나는 읽어 나갔다.
1화를 읽고, 2화를 읽고, 3화를 읽고... 어디까지 읽었을까. 인터넷으로 책을 보는 것 자체가 매우 피곤한 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연재소설은 손에 들고 다니며 내가 읽고 싶을 때, 읽고 싶은 곳에서 읽을 수 있는 자유를 앗아간 대신 "무료 시사회"라는 비장의 카드를 제시한 셈이다. 감질나게 하나씩 읽는 것도 좋지만, 역시 책은 '책'일 때가 가장 좋다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읽기는 그만뒀다.
그리고 한참 후, 흰 여백의 까만 글씨들은 두 권의 책으로 다시 태어나 내게로 왔다.
승자는 혼자다.
외로움이 뚝뚝 떨어지는 제목처럼 승자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위태로운 자리이고, 혼자일 때 가장 빛난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이미 승자인 사람과 승자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 크게 나뉜다. 물론 여기서 승자의 기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와 명예, 권력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보편적인 승자의 기준에 모두 부합되는 이고르와 하미드. 이들은 '에바'라는 한 여자를 아내로 두었고, 아내로 두고 있다. 이고르는 그의 전처이자 유일한 사랑이라 믿는 에바를 되찾고 싶어 프랑스 칸으로 온다. 그리고 하미드는 현재 그의 곁에 있는 아내 에바와 함께 사업차 프랑스 칸으로 왔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그곳은 전 세계인에게 익숙한 '칸' 혹은 '깐느'라 불리는 프랑스 남부 해변 도시다.
왜 하필 무대가 칸이며, 그 시기가 칸 국제영화제였을까란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 모든 영화인이라면 밟고 싶은 꿈의 레드카펫이 펼쳐진 칸 국제영화제는 영화 산업의 상징과도 같다. 이미 몇 년전부터 국내 영화들이 매년 초청받아 배우와 감독들이 그 곳에서 포즈를 취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심심치 않게 봐왔다. 또한 우리 영화들이 해외 필름 마켓에서 얼마의 가치를 인정받았는지도 또 다른 이슈가 됐다. 칸 국제영화제의 본래 취지 같은 것은 이미 우리들이 자각할 새도 없이 퇴색되어 버렸다. 그곳은 누군가의 꿈을 이뤄주는 가장 화려한 무대이고, 승자의 여유와 재력을 과시하는 장이며, 닿을 수 없는 유명인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p.194)이다.이런 이유들만으로도 세계의 이목이 1년에 한 번 칸으로 집중되기에 충분했다.
그러자 왜 작가가 칸을 무대로 선택했는지 어렴풋하게 짐작됐다.
승자들의 축제지만, 그 화려한 이면에 언젠가는 승자의 대열에 합류겠다는 욕망으로 가득찬 그 밖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장소가 칸 국제영화제였던 것이다. 작가의 이런 생각들은 승자가 되고 싶은 욕구를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계와 패션계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스타덤에 오르기 위해 기회를 노리는 배우, 모델, 감독. 이들의 욕구를 이용해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사람들까지 칸 국제영화제 그 자체가 욕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욕망의 중심에 겉으로 보기엔 승자지만,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상실한 이고르를 데려다 놓는다.
큰 죄의식이나 두려움 없이 지능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그. 그가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의 전처 에바를 다시 그의 곁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그런데 그렇게 무작위로 사람을 죽여대는 것이 그녀를 과연 온전히 그의 곁으로 데려다 줄 것인가!
책 속의 이고르 역시 이 문제에 대한 확신이 점점 사라진다.
이제 그는 자문한다.
과연 에바에 대한 나의 사랑이 지금 내가 벌이고 있는 일이 용납될 만큼 가치 있는 걸일까. p.214
내키는 대로 누군가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으로 그녀를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그릇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하면서 되찾고 싶은 사람을 왜 곁에 있을 때는 그토록 소홀했는지... 이고르가 하는 모든 일은 잔혹한 "소 읽고 외양간 고치기"이다.
완벽한 살인 기술을 몸에 익힌 이고르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1권의 말미, 이고르도 더 이상 안전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여기서 그만둘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럼 앞으로 그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더 벌어질 것인지, 본격적인 내용은 2권에서 이어질 태세다.
1권을 읽는 동안 느낀 점은 1권 자체가 2권을 위한 장편 프롤로그 같다는 것이다. 새로운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그 등장인물의 과거사를 이야기 함으로써 현재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1권 내용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제대로된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던 나로서는 너무 길다 싶은 프를로그였다. 특히나 이고르의 과거는 비슷한 내용이 수시로 반복되기도 한다. 그래도 역시 파올로 코엘료라 생각되는 것은 뛰어난 이야기꾼답게 이 모든 것을 비교적 읽기 쉽고 흥미로운 문장으로 풀어냈다는 점이고, 때때로 상황에 걸맞는 또 다른 이야기(우화, 옛날 이야기 같은...)를 들려줌으로써 재미를 더하고 있다는 것이다.
2권에서 이고르는 더 무자비해 지고, 그만큼 큰 위기에 빠지겠지?
그리고 하미드와 에바, 그 외 승자의 길 입구에 선 가브리엘라와 재스민은 모두 어떻게 얽히는 것일까?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내가 궁금한 것은 승자의 최후이겠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권을 읽고 계속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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