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다가오면, 나는 세계사 공부를 가장 나중으로 미뤄뒀었다.
역사 과목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국사와 달리 세계사의 등장인물과 사건 암기는 내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금새 외워 놓고도 돌아서면 헷갈려하며 틀리기를 반복했다. 그 수많았던 왕들의 부모란 사람들은 아무리 자식이 많아도 그렇지 이름 하나 성의있게 짓지 않고 죄다 비슷한 이름에 2세, 3세를 갖다 붙여서 나를 괴롭혔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도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다. 왜냐하면 세계사 왕들보다 더 기억하기 힘들었던 것이 제우스의 가족관계와 신들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세기의 바람둥이, 제우스는 신과 인간 가릴 것 없이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면 그의 여자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 결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신 혹은 인간은 제우스와 혈연관계에 있었다.
그러다 몇 달 전부터 읽기 시작한 것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 시리즈였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 아무리 제목이 <신>이라 해도 그 내용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와 얽혀 있을 줄은 몰랐다. 상징적인 제목일 거라는 나의 예상을 뒤엎고, <신> 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올림포스 산에 사는 수많은 신들이 '신'을 양성하는 강사로 등장했다. 그런데도 나는 신화에 대한 체계적인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겠다고 덤볐던 것이다. 결국 1권 중반부터는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갔고, 해결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상식 수준만큼은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를 위해 만든 책과 같았던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요점 정리를 해 놓은 종합서라고 할 수 있다. 골치 아픈 이론서가 아니라서 나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의 복잡함때문에 거부감이 있던 사람들조차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 구성돼 있다. 또한 글자의 크기도 일반 책의 1.5배는 됨직하게 크고, 각 단락의 내용도 길지 않고 흥미진진하여 금새 읽혔다.
무엇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각 장에서 도표로 정리해 놓은 신들의 관계였다. 매번 혼란스러웠던 신들의 관계가 이 책에서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므로 한 눈에 알아보기 쉽다. 그리고 반복학습이 되도록 이미 등장했던 인물의 후손 이야기가 나오면 앞서 나왔던 인물까지 포함시킨 더 자세한 도표에 등장해 기억을 돕는다.
그러나 이 책의 목표 독자는 나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초보적 수준에 있는 사람들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신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열에 아홉은 내용이 허술하거나 빈약한 책으로 느낄 확률이 높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입문서로서 기초를 다지는 책이기 때문에 내가 봤을 때도 내용의 깊이는 얕았다. 반면 적당히 "상식"으로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로만 알차게 담고 있으므로 이 책의 목적에 적합한 사람들이 읽는다면 분명 활용도가 높은 책이다. 나 역시 이 책의 도움으로 이제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신화가 등장할 때마다 그와 얽힌 그림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언어와 각종 문화의 기원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하나씩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그동안 그리스 로마 신화가 복잡하고 어려웠다면, 이 책으로 다시 시작하는 건 어떨까?
알고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으며, 오히려 신세계를 만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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