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冊 it now

다이어트의 여왕 - 갑작스런 결별이 그녀에게 미친 영향

by 푸른바람꽃 2009. 12. 10.

다이어트의 여왕

저자 백영옥  
출판사 문학동네   발간일 2009.07.06
책소개 누군가는 실패하고, 누군가는 성공한다 갑작스런 그의 이별 통보, 그리고 다이어트 시작!리얼리티 쇼보...

"매일 아침밥을 먹어야 사람이 하루 종일 힘을 쓴다!"

이것은 엄마가 주부로서 지금까지 지켜오신 철칙이다.

그리하여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침밥을 걸러본 적이 없다. 이제는 한 숟가락을 먹더라도 꼭 아침을 챙겨먹는 것이 오랜 습관이 되어 하루라도 건너뛸라치면 뱃속에서 먼저 요동을 친다. 아침 일곱시! 내 몸은 이미 아침밥이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들어오는 과정 자체가 프로그래밍 되어 버렸다.

 

그러나 아침밥을 먹는 내게도 몇 달전부터 또 다른 습관 하나가 생겼다. 바로 밥그릇에서 한 숟갈씩 밥을 덜어내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침밥으로 고봉밥을 먹느냐. 그런 것도 아니다. 작은 밥그릇에 반 공기(성인 남자의 세 숟갈 정도 되려나...). 그것이 내가 먹는 아침밥의 양이지만, 나는 거기서 또 한 숟가락을 덜어내야 조금 안심하고 아침밥을 먹게 됐다. 이렇게 된 것은 몇 달전 체중계가 표시한 +3kg의 충격 때문이다.

 

한 번도 뚱뚱해본 적 없는 여자는 뚱뚱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무감하다(p. 82)

 

맞는 말이다. '과부 심정은 홀아비가 안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뚱뚱해 본 적 없는 여자가 뚱뚱한 여자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은 수박 겉핥기 수준에도 못 미칠 것이다. 나 역시 대한민국 표준 체중을 기준으로 보자면 한 번도 과체중이었던 적이 없다. 그러나 난 늘 내가 뚱뚱한 건 아닐까 의심하며 살고 있다. 

 

도시 여자들의 비극은 광고에나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몸을,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낀다는 것에 있진 않을까?(p.86) 

 

나 역시 도시에서 나고 자란 도시 여자고, 매일 보기 싫어도 날씬한 그녀들이 자랑하는 S라인을 질리도록 보며 살아간다. 그래서 체중의 증가는 내게 그야말로 비극이다.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몸매를 이제 문 밖을 나서면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 비정상적인 몸매가 나도 모르게 이상적인 몸매로 각인돼 버렸고, 날씬하면 더 날씬해 지려고 용을 쓰는 평범한 여자들에게는 늘상 본인이 뚱뚱하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여자들은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365일 다이어트 모드다.       

 

대부분의 다이어트는 체중계의 수치에 배신당하면서 시작된다.

제발 거짓말이라고 외쳐보아도, 몇 번을 다시 올라가 보아도 숫자는 변함이 없을 때 그 즉시 다이어트 모드로 전환된다. 그러나 <다이어트 여왕>의 주인공 정연두는 그 계기가 3년 사귄 애인의 이별통보였다. 이별은 그녀에게 억제할 수 없는 식욕과 싸이월드 추격자 본능, 불면증, 실업 등의 후유증을 남겼다. 이별 후 100kg에 육박하는 몸무게에도 그녀는 스스로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의 직업이 음식을 사랑하는 요리사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 스스로 말라깽이 여자에 대한 환상이나 욕구가 없었던 것도 같다. 그랬던 그녀가 투지를 불태우게 됐던 것은 친구가 전해준 전 애인의 현재 여친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부터다.

 

연두의 친구 인경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작가로서 성공을 거둬야 하고, 연두는 전 애인에게 보란듯이 스스로 변화되고 싶었다. 뚱뚱한 여자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날씬한 여자가 되는 것이다. 연두와 인경, 최PD, 그리고 나머지 열 세명의 다이어트 여왕 후보까지 모두 합류하자 본격적인 '다이어트 여왕' 서바이벌이 시작된다. 책을 읽기 전부터 이 책의 모티브가 외국에서 먼저 시작돼 우리나라에까지 상륙한 다이어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작가는 아마도 그 케이블 프로그램의 작가와 출연진의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써내려 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채널을 돌리다가 잠깐씩 봤던 그 프로그램의 형식과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아서 책의 중반까지는 마치 그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므로 카메라가 꺼지고 나서 그들은 어떻게 지내며, 무엇을 하고 있을까, 또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궁금증은 이 책으로 상당 부분 해소된다. 나는 이 책의 결말부에 가서나 이 살빼기 전쟁이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중반쯤 왔을 때 예상과 달리 프로그램은 종료되고, 여왕은 탄생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말그대로 '방송 후 폭풍'에 관한 것들이었다.

 

후보자들의 과거가 드러나고, 여왕 선정의 문제가 불거지며, 누군가의 인생은 구겨져 쓰레기통에 들어간 대신 누군가의 인생은 하루 아침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다이어트로 찾아온 외모의 변화 뿐만 아니라 생활의 변화는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바람에 미처 적응할 시간도 없이 삶의 지축을 흔들어 버렸다. 나는 이런 변화에 대한 주인공 정연두의 심리적 부적응이 살빼기 경쟁이라도 하듯 모두가 날씬하고자 하는 사회에 던지는 옐로우 카드로 그려지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결국에는 오늘도 살을 빼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현대 여성들의 내면을 속 시원히 긁어주겠거니 생각했는데 이야기는 조금 어긋나게 흘러간다.

 

책의 중반 이후는 다이어트를 향해 전력질주 해 오다가 피니쉬 라인을 통과했는데, 이젠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우왕좌왕 헤매는 모습같았다. 방송이 끝나고 나서도 정연두가 자신과 벌이는 '다이어트 여왕 시즌 2'라는 설정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후유증이었고 짚고 넘어갈 문제였다. 내가 후반부를 읽으면서 흐름이 자꾸 끊어진 이유는 시후, 안나, 그리고 전 애인의 현재 애인에 자꾸 집착하는 정연두의 모습때문이었다.

 

결별이 그녀에게 다이어트의 계기가 된 것으로 나는 그녀의 이별이 일단락 되길 바랬다. 그리고 결론 즈음에 그녀의 전 애인과 달라진 모습으로 당당히 조우하는 것까지는 상상했었다. 그런데 그녀는 다이어트 이후 섭식의 장애 뿐만 아니라 '김민정'(전 애인의 현재 애인이라 믿고 있는)이란 여자에게 집착하고, 과거 자신의 어떤 잘못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등의 내용이 후반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친구라도 당장 정신과 상담을 권할 정도로 그녀는 기이한 행동을 보이지만, 그녀가 '김민정'에게 집착하는 이유나 그녀의 과거 잘못이 옛 애인에 대한 미련때문이었는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명확하게 전달되지도 않기 때문에 되려 책의 사족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어쨌든 그녀가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자 나서면서부터 잠시 삼천포로 빠졌던 내용이 정상 궤도로 돌아온 것 같았고, 이야기가 끝날 때쯤 에 작가는 의외의 반전까지 독자에게 선물한다. 책의 중간 중간 추리소설 작가들의 이름까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백영옥 작가는 추리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작가가 던진 반전과 그 반전에 대해 연두는 제법 어른스럽게 받아들인다. 나라면 그렇게 태연하게 받아 넘기지 못했을 것 같다. 화가 나거나 부끄러우면 붉어지는 얼굴 때문에....  일단 표정관리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처참한 실패가 깊은 위로가 되는 불편한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p.412)

 

숨기고 싶지만, 다른 사람의 불행이 스스로의 위안이 될 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것을 연두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고, 그런 마음을 알기에 다른 사람을 용서까지는 힘들지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자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날씬한 그녀가 살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조금만 몸을 움직이고, 조금만 덜 먹으면, 뚱뚱한 몸은 어느덧 낡은 코트처럼 벗겨지고

그 속에 원래의 내 모습이 들어 있을 거라고 꿈꾼다.(p.209)

 

이런 희망마저도 없다면 다이어트 역시 백악기 공룡처럼 언젠가 지구상에서 멸종할 것이다.  

날 때부터 우량아였다고 해도 껍질 속 알맹이는 S라인의 명품 몸매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리고 언제라도 본인이 큰 마음(진짜 큰 마음 ㅋㅋ) 먹고 노력만 하면 그 알맹이를 꺼낼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

이 두 가지가 오늘도 우리가 다이어트에 열심인 이유이며, 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도 군살은 좀 빼고, 너도 나도 다이어트에 미친 세상을 이야기하는 튼실한 알맹이만 남겼다면 모두가 부러워하는 명품 몸매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독자들에게 예상 밖의 묵직한 무게와 두께가 부담스럽지 않을만큼 건강한 수준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