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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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눈을 떠 보니 시계 바늘이 숫자 9를 가르키고 있었다. 평소보다 2시간이나 늦은 기상시간이었다. 주말이라며 전날 늦게까지 책을 읽은 여파였으나, 그 날 따라 부산스럽던 여느 일요일 아침과 달리 밖이 지나치게 조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잠을 방해하며 윙윙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도 없고, 달그락 달그락 식기들이 부딪히는 소리도 없었다. 내가 움직이며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일요일 아침마다 들리던 소음이 사라졌다는 것... 그것은 엄마의 부재를 의미했다.
시간표처럼 짜여진 평일의 일과가 있듯, 우리 가족들에겐 일요일 아침도 예외가 아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 아버지와 오빠가 운동을 나가고 나면 엄마는 두 남자가 빠져 나간 자리에 덩그라니 남은 빨래감을 모아 세탁기를 작동시키고, 소소한 집안일과 요리를 시작하신다. 그런데 그 날의 엄마는 이 모든 일을 뒤로 미룬 채 어디론가 가신 것이다. 그 후 엄마는 저녁 다섯 시쯤 돌아오셨다. 식구들의 저녁을 늦지 않게 준비하려고 서두르신 기색이 역력했다. 걱정과 궁금증으로 식구들을 모두 벌 세우셨던 엄마의 행선지는 시 외곽의 어느 산이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답답하셨던 나머지 문득 산에 가고 싶으셨단다. 그래서 친구분과 산에 올라 정상에 있는 돌부처님께 기도까지 드리고 오는 길이라 하셨다. 그렇게 엄마의 외출 소동이 있은 후, 나는 곧장 엄마 친구분의 연락처를 내 전화부에 등록했다. 엄마의 행방이 묘연하던 그 순간, 대체 누구에게 엄마의 소식을 물어봐야 하는지 그것이 가장 막막했었기 때문이다. 고작 전화번호 하나인데 나는 어쩐지 엄마라는 거대한 퍼즐에서 아주 작은 조각 하나를 끼워 맞춘 기분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내가 아는 만큼의 엄마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내가 알만큼 안다고 믿고 있는 아버지와 오빠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가족관계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알아야 자신있게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일 '안다'는 의미가 그 사람의 내면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면, 나는 영영 우리 식구를 '안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데, 제 아무리 가족이라 한들 그 사람의 속내까지 모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오랜시간 곁에서 지켜본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 가족을 겉은 물론 속까지 알만큼 안다고 여겼다. 그러나 엄마의 외출 소동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이현 작가의 신작 <나는 모른다>를 읽게 되면서 나는 도리어 내 가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과연 내가 아는 가족의 모습이 진짜 그들의 모습이며, 그것이 전부일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달콤한 나의 도시> 이 후 스타 작가로 급부상 한 정이현 작가의 <너는 모른다>에선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김유지 실종사건'을 중심으로 전개해 나간다. 거기다 책의 프롤로그 격으로 등장한 신원불명의 남자 익사체 사건은 이 가족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문을 품게함으로써 이중적 사건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너는 모른다>의 내용은 내게 우리 엄마의 외출만큼이나 느닷없는 것이었다. 그 형태가 칙릿이든 아니든 정이현 작가의 신작은 다시 한 번 2030 여성들의 마음을 보듬어 줄 작품이겠거니 기대하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실망도 컸다. 그러나 막상 <너는 모른다>를 읽고 나서는 이 작품과 작가의 발전된 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너는 모른다>는 저자의 전작들을 모두 잊게할 만큼 새로운 느낌이다. 내가 알던 정이현이란 작가의 작품이 맞나 싶울 정도로 이번 작품에서 저자의 글은 성숙해 있었다. 전체적으로 문장들은 감정적 동요 없이 잔잔한데,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매우 깊다. 그래서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한 호수와도 같은 작품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저자는 어느 가족의 위기를 통해 가족의 의미와 그들 간의 소통, 단절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제를 내포한 작품들은 이전에도 많았다. 갈등의 단계를 숙명적으로 거쳐야 하는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에서 화목하고 정상적인 가족은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 있는 가정을 보는데 익숙하고, 그 중에서도 재혼가정의 불화는 익숙함을 넘어 식상한 소재로 느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책의 가족들은 보통의 재혼가정에서 겪는 불화보다 더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너는 모른다>에 등장하는 김상호의 가족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매듭으로 대충 묶여 있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그들은 한 집에 사는 동거인에 불과했고, 이 가족이 당장 해체된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 문제적 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알만큼 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가족의 비극은 근본적으로 이 착각에서 비롯됐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는 서로를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이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껍데기가 서로의 전부라 생각했고, 더 이상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열 한 살짜리 막내 김유지가 행방불명되는 사건을 겪으면서 점차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와 함께 수면 아래 잠겨 있던 김상호, 진옥영, 김은성, 김혜성, 김유지 이렇게 다섯 명이 각각 숨기고 있던 비밀과 그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서로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무심코 지나쳐온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기에 이른다.
사회 시간에 가족은 1차 사회집단이라고 배웠다. 그만큼 가족관계가 모든 사회관계의 가장 기본이란 뜻이다. 따라서 현대인들이 소통의 부재, 대화의 단절, 개인의 원자화 및 고립화 등으로 겪고 있는 모든 문제들도 어쩌면 가족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알만큼 안다는 착각 속에, 나머지는 모른척 외면하며 사느라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김상호의 가족들이 그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며 살아간다. 마치 수면 위에 떠오른 정체불명의 남자 시체에만 집중할 뿐 그 남자가 익사체로 발견된 사연에 대해서는 무심한 것처럼 겉으로 드러난 문제에만 야단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나와 너, 우리는 영원히 '무엇'의 정체를 모를 수 밖에 없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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