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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 역사가 전하지 못한 소현의 삶과 고뇌를 엿보다

by 푸른바람꽃 2010. 4. 28.

소현

저자 김인숙  
출판사 자음과모음   발간일 2010.03.08
책소개 조선을 사랑한 소현 세자. 하지만 조선은 그를 버렸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 대산문...

 

계절은 봄인데 마음의 번잡함으로 그 변화에 무감한 채 지나고 있었다. 그래서 형형색색 봄꽃들이 피어나는 동안에도 어여쁘게 바라보질 못했고, 불현듯 생각이 나 돌아보니 꽃은 이미 지고 이파리만 무성했다. 그렇게 꽃을 잃은 봄날, 스산한 마음으로 <소현>을 마주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인조의 아들이고, 청에 볼모로 붙잡혀 갔던 비운의 세자였으며, 그 죽음은 의문에 휩싸여 있다는 정도에 그친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기에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그의 삶 한 조각이 김인숙 작가의 <소현>에 담겨 있었다.

 

최근 소현세자의 삶을 주목하게 된 데에는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과 함께 화제 속에 종영한 한 드라마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에게 닥쳐올 미래를 나는 역사 속 실존 인물들에게서 찾으려 했다. 그런 이유로 자연히 소현세자와 그의 막내아들 석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사는 왕이 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이 또한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설움일 것이다. 그렇게 정보의 바다에서도 건져 내지 못한 소현세자의 삶을 나는 소설 <소현>으로라도 만나보고 싶었다. <소현>은 우리가 '삼전도의 굴욕'으로 배운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세자가 봉림대군과 함께 청에 볼모로 끌려간지 7년의 시간이 흐른 후를 그리고 있다. 그 무렵 청은 황제였던 홍타이지가 숨을 거두어 차기 황제 자리를 두고 극도의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소현세자 역시 적국의 어지러운 시국에 가능한 말을 아끼고 몸을 사려야만 했다. 한 나라의 세자이고 임금의 아들이었으나, 적국의 인질로서의 그는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 소현세자의 삶은 슬픔과 고독으로 가득했다.

 

적국에서 소현이 무사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적의 친구가 되는 것. 그러나 세자의 적은 청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몇 년만에야 잠시 돌아온 조선 땅에서 세자는 이미 임금이 자신을 정적(政敵)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거기에 세자의 충심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정치적인 상황과 소문, 그리고 임금과 세자라는 둘의 관계가 세자를 임금의 적으로 몰았고, 세자의 뜻과 관계없이 편은 이미 갈려 있었다.

 

세자는 임금의 아들이었다. 임금이 그들에 의해 이금이 되었으니, 세자도 그들에 의해 세자가 되었다.

세자가 그들의 편이란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기원의 말처럼 세자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세자가 그들의 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세자는 적의 땅에서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었다.

적의 땅에 머물며 낮과 밤마다 홀로 삭였던 고독이 조선의 땅에 돌아와서는 고독을 넘어 슬픔이 되었다.

그러한데, 임금은 나를 위해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정녕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p. 161

 

세자가 적국에서 치욕의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단 하나의 희망, 조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언젠가 조선으로 돌아가 부국강병하여 그가 당한 이 수모를 반드시 되갚아 주리라는 그 다짐이 세자를 살게 한 것이다. 그리고 돌아갔을 때 자신의 길고 긴 외로움까지 품어줄 어버이의 품을 그리며 위안을 삼았으리라. 그런데 적국에서의 7년이란 시간은 아비가 아들의 뜻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길었던 모양이다. 세자 자신은 한시도 임금의 안위와 조선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그가 돌아온 조선에서는 제 마음대로 세자를 끼워넣고 역모의 기운이 일어나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다시금 적국으로 돌아가면서 세자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아비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아비에게 버려졌고,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났으나 나라에게 버려진 목숨이었다.    p. 323

 

책의 말미에서 소현세자는 아끼던 자의 죽음을 전해 듣고 이런 안타까움 심정을 가졌었다. 그러나 아비와 나라에게 버려졌다는 그 슬픔은 적국에 끌려와 있었던 소현세자를 비롯해 석경과 흔, 만상, 막금 등 모두에게 동병상련의 아픔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소현>은 소현세자가 조선의 세자이자 임금의 아들, 적국의 볼모로 살아야 했던 시간들 중 한 토막을 잘라내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부터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의 삶까지 독자들에게 여과없이 전한다.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 가장 먼저 배우는 일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었다.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겹겹이 쌓여 마침내 남는 것이 없었다. (중략)

마침내 남는 것 단 한 가지를 위해 모든 것을 지우는 일,

그것이 높은 자리의 일임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p. 206

 

소현세자가 그의 장자를 보며 가졌던 이런 생각들은 세자 스스로가 살아온 삶이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다.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세자였으나, 그의 뜻대로 그의 삶을 살았던 순간은 한시도 없었을 그 삶이 비통하고 애처로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청의 볼모 생활을 끝내고 조선으로 영구히 환국한 지 두 달 만에 세자는 세상을 떠났다. 그 죽음을 역사는 학질로 기록하였지만, 그의 죽음 이후 봉림대군이 세자로 책봉되고 세자빈과 원손이었던 소현의 처자식이 거의 몰살되다시피 한 정황은 더욱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게 한다.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죽음이 어딨겠냐만 소현세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소설로 만나고나니 그 죽음의 원인이 무엇이었든 그의 삶이 애처롭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을테고, 산 자도 산 목숨이 아니었던 시기였으니 소현세자의 죽음은 아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간 소현세자의 삶보다 죽음에 더 관심을 기울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집착하는 사이 소현세자는 점점 그 이름만 떠돌 뿐 실체는 시간의 더께 속에 묻히고 있었다. 따라서 그런 소현세자를 세상에 다시 불러내 준 소설 <소현>이 참 고맙고, 또 반가웠다. 이 작품은 전기가 아닌 작가적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이라는 점을 차지하고서라도 소현세자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 등을 미루어 짐작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아울러 작가가 5년에 걸쳐 완성한 이 작품에서 심사숙고하여 써내려 갔을 단어와 문장은 매우 진중하고, 문장 내에서도 대구와 반복의 묘미가 살아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크게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세번째 장의 글머리로 적혀 있었던 본문의 글귀는 소현세자와 조선의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지금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부국하고, 강병하리라. 조선이 그리하리라.

그리되기를 위하여 내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리라.

절대로 그 기다림을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모든 죄가 백성의 이름으로 사하여지리라.

아무것도, 결코 아무것도 잊지 않으리라.         (p.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