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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니치 코드 - 의문의 책 '보이니치 필사본'에 다가서다

by 푸른바람꽃 2010. 4. 22.

보이니치 코드

저자 엔리케 호벤  역자 유혜경  원저자 Joven, Enrique  
출판사 해냄출판사   발간일 2010.03.30
책소개 불가사의한 암호서 '보이니치 필사본'의 비밀! 보이니치 필사본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친 소설『보이니...

 

매주 일요일, 신비한 사건이나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재연하여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방송 초기에는 자주 시청했었는데, 근래에는 좀처럼 보질 못했었다. 그러다 <보이니치 코드>를 읽기 전 '보이니치 필사본'에 대해 미리 알아보려고 검색한 결과 마침 그 방송 방영분도 화면에 떴다. 이렇게 방송에까지 소개된 것을 보면 학자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세간에서도 '보이니치 코드'가 제법 유명한 듯 했다. 그러나 나는 <보이니치 코드>를 통해 의문의 책 '보이니치 필사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보이니치 필사본'은 1912년 예수회 신학교에서 이 책을 구입했던 서적상이자 고문서 수집가였던 윌프레드 보이니치의 이름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보이니치 코드'에 대해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들은 <보이니치 코드>의 도입부에 제법 자세히 소개돼 있다. 그러나 '보이니치 필사본'은 알려진 것보다 감춰진 것들이 더 많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보이니치 필사본'이 '읽을 수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해독할 수 없는 암호 같은 기호들과 기이한 그림들로 구성된 일종의 그림책인 '보이니치 필사본'은 그래서 더 주목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이니치 코드>는 이 의문의 책 '보이니치 필사본'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세 사람-예수회 신부이며 중학교 교사인 엑토르 신부, 물리학 박사 존, 암호해독 프로그래머 요안나-의 보이니치 코드 해독 과정을 담고 있다.

 

<보이니치 코드>의 제목만 봤을 때 나는 비슷한 제목의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 코드>를 떠올렸다. 댄 브라운의 작품들은 내가 '지적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보이니치 코드> 역시 '지적 스릴러'라는 장르의 연장선 상에 있는 작품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또한 스릴러 장르를 워낙 좋아하는 편이라 이 부분에 대한 기대도 컸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보이니치 코드>는 허구 보다는 과학자들의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재구성 한 과학 역사서와 같았다.

 

주인공들이 '보이니치 필사본'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그 책이 만들어진 목적이나 당시의 시대 상황, 책과 관련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많은 과학자들에 대한 방대한 자료 조사가 당연히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보이니치 코드>는 그들이 찾아낸 전문 지식들을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이 점은 <보이니치 코드>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읽느냐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고문서에 얽힌 치밀한 스릴러를 기대했던 내게는 <보이니치 코드>의 이런 점이 단점으로 느껴졌다.

 

차라리 천체 물리학에 관한 학문적 내용을 담은 교양 서적이었다면 그 나름의 목적으로 읽어 나갔겠지만, 나는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소설로서의 장르적 재미를 기대하고 읽어서 그런지 그에 대한 실망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나 천체 물리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사람이 <보이니치 코드>를 읽는다면 충분히 흥미를 불러일으킬 내용도 꽤 많다. 실제 천체 물리학자이기도 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이 소설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으며, 이름만 알고 있던 중세 과학자 혹은 수학자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는 나 역시 관심있게 읽은 부분이다. 특히 덴마크 수학자인 튀코 브라헤와 '케플러의 법칙'으로 유명한 요하네스 케플러, 이 두 사람의 관계와 튀코의 의문스런 죽음 등은 <보이니치 코드>의 전반적인 내용을 떠나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편집 상 아쉬웠던 점은 책의 주석이 본문 속에서 괄호 처리 된 부분이다. 그래서 그것이 오히려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서 주석이 일반 소설에 비해 많은데도 불구하고 <보이니치 코드>는 문장 중간 중간에 주석을 삽입하여 문장의 흐름을 깨트리는 경향이 있다. 그럴 바에는 다른 책들처럼 주석을 책의 하단부에 별도 표기했더라면 최소한 문장을 문장 그대로 읽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그 내용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의문의 고문서 '보이니치 필사본'은 지적 스릴러 소설의 소재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그 소재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저자의 몫인데 <보이니치 코드>의 엔리케 호벤이 보여준 방식은 다소 어렵고 지루한 면이 없지 않다. 최근에는 지적 호기심의 충족과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재미를 동시에 느끼기 위해 '지적 스릴러'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도 많다. 그리고  그런 장르로 분류된 소설들 중에서도 두 가지 요소 중 어느 부분에 더 치중했느냐에 따라 소설에 대한 만족도가 달라질 것이다. <보이니치 코드>는 다분히 지식 전달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이 부분을 감안하고 중세 천체 물리학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이 작품을 접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지적 스릴러' 소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