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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it now

떠나는 그 길에 부디 사랑만 품고 가시길...

by 푸른바람꽃 2010. 4. 29.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저자 노희경  
출판사 북로그컴퍼니   발간일 2010.04.23
책소개 우리 시대 최고의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절절한 사모곡! 인간의 진정성을 들여다보면서 사랑의 가치를...

 

어느덧 다음주면 어버이날이다. 매년 어버이날이 다가올 때마다 올해는 어떤 선물을 드릴까 고민스러웠다. 가급적 필요로 하시는 것을 선물로 안겨드려야 받으시는 분도 흡족하실텐데 못난 자식이 그런 것 하나 헤아리지 못하고 은근슬쩍 여쭤볼 때마다 부모님의 입에서는 매번 "아무것도 필요없다...괜찮다...너희들 필요한 것이나 사 써라"는 답이 돌아나올 뿐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평소에 부모님께서 흘리는 말씀으로라도 "저런 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  귀담아 들어두곤 한다. 그 덕에 올해는 일찌감치 두 분의 선물을 결정해 두었지만,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기에는 이 선물들이 작고 초라하단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늘 부모님께 고맙고 감사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어버이날, 혹은 부모님의 생신과 같은 멍석이 깔리지 않으면 그런 마음을 좀처럼 표현하지 못하고 산다. 오히려 속마음과 다르게 모진 말들로 부모님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일이 더 많았다. 고마워도 고맙다 말을 못해 죄송하고, 또 죄송해 하면서도 죄송하다는 말조차 못하는 바보라 이제는 부모님께 마음을 숨기는 일이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다 속절없이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 분명하다. 왜 그 때 좀 더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을까 하고...... 노희경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도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미처 헤아릴 틈도 없이  이별을 준비해야 했던 한 가족을 소개하고 있다. 이별은 분명 가슴 아프고 슬프겠지만,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가득했던 그 이별의 과정은 아름답다고 역설하면서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자궁암 말기의 오십대 여성 '인희'의 삶과 죽음을 통해 엄마와 아내, 누나, 며느리로서 한 평생 살았던 여인의 고단한 인생을 우리가 얼마나 무심하게 지나쳤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그동안 '인희'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에게 싫은 내색 한 번 한 적 없었고, 무뚝뚝한 남편의 차가운 말도 웃으며 받아 넘겼다. 딸과 살가운 모녀의 정을 나누지 못해도 늘 그 딸이 자랑스러웠고,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되겠다며 삼수까지 하는 아들은 안타까웠다. 그리고 하나 밖에 없는 피붙이인 남동생이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자 어떻게든 다독여서 제대로 된 인생을 살게끔 돕고 싶어했다. 이것이 '인희'의 삶이었다. 그녀 자신은 버리고 오직 가족들을 위해 사는 것을 삶의 전부로 여긴 여인에게 느닷없는 죽음은 가족들에게도 큰 충격과 상실을 안겨 준다. 그 중에서도 딸 '연수'가 엄마의 병세를 뒤늦게 알게된 다음 울음과 함께 토해내는 말들은 이기적이다 욕을 먹어도 공감할 수 밖에 없어서 내 마음까지 저려 왔다.

 

"... 전요, 아줌마, 전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사람은 다, 한 번은 다 죽는데, 우리 엄마가 죽게 될 줄은 정말 몰랐고,

딸들은 다 도둑년이라는데 제가 이렇게 나쁜 년인지 전 몰랐어요.

지금 이 순간두 난 우리 엄마가 얼마나 아플까보다는 엄마가 안 계시면 난 어쩌나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엄마가 없는데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까 그 생각밖에 안들어요. 나, 어떡해요, 아줌마?"    p.168

 

의사였던 남편은 제 안식구 건강하나 챙기지 못했던 자신의 무심함과 무능함을 자책하고, 그동안 당연하다는 듯 사랑과 희생만을 강요했던 자식들은 더이상 자식노릇도 할 수 없음에 절망한다. 이렇게 가족들이 각자의 슬픔과 아픔에 허덕일 동안에도 손을 쓸 수 조차 없는 지경이 될 때까지 암세포들에게 온몸을 내어준 '인희'는 자신의 고통 보다는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더욱 괴로워 했다. 그런 그녀의 끝없는 사랑과 희생을 지켜보며 한 여자가 엄마로 탈바꿈하는 순간부터 엄마들은 마치 쉘 실버스타인의 작품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그 나무와 다름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참 묘하다. 살아서는 어머니가 그냥 어머니더니, 그 이상은 아니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녀 없이 세상이 살아지니 참 묘하다.   p.313

 

지금의 나는 책 속의 딸 '연수'처럼 엄마가 없는 세상을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 또한 끝내는 그 이별을 스스로 감당해야 할 미래가 나를 몹시도 두렵게 한다. 살아지지 않을 것만 같은 그 세상을 다들 견디고 살아가는 것을 보며, 나 역시 그들처럼 무뎌져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인생이 덧없어 보인다. 그동안 현재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 명언을 많이 들어 왔지만, 지금도 그 의미를 망각한 채 이 순간이 영원하리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부모님께 전해야 할 사랑과 감사도 자꾸 내일로 미루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당연히 올 것 같은 내일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이미 늦고 만다. 이런 때늦은 후회로 가슴을 치는 일이 없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뿐이다. 오늘 더 많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더 자주 표현하는 것... 더는 망설이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