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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흩어진 날들 - 빈티지 한 일본을 만나다

by 푸른바람꽃 2010. 6. 9.

우리 흩어진 날들

저자 강한나  
출판사 큰나무   발간일 2010.05.20
책소개 감성 충만 일본 여행에세이 『우리 흩어진 날들』. 일본 현지 기상캐스터로 활동하는 저자가 동경 하늘...

 

처음에는 표지와 제목이 예뻐서 손보다 눈이 먼저 간 책이다. 일본 여행 에세이라고 하더니 그 내용에 걸맞게 표지에서부터 핑크빛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책의 내용까지 살펴보고 나서는 저자 강한나가 전하는 일본 구석구석의 이야기에 매료되고 말았다. 이 책의 저자를 나는 그간 전혀 알지 못했다. 따라서 이 책이 그녀와의 첫만남과 다름 없었다. 

 

저자는 일본의 대표 도시들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 교토, 오사카, 나가사키, 고베, 나라, 히로시마를 여행하며 일본 여행 중에 본 것들은 카메라에 담고, 생각한 것들은 글로 풀어 놓았다. 특이한 점은 도시들을 연속하여 돌아본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한 곳씩... 그래서 분리된 각 도시의 이야기들은 일본을 형성하는 펴즐 조각들처럼 제 나름의 모양과 색깔을 띠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일본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저자는 일본의 "빈티지" 즉, "낡은"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부제에서도 "빈티지 감성 여행에세이"라고 친히 이 책을 짧게 설명하고 있다.

 

가급적 언어 순화 차원에서라도 외래어 보다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빈티지"라는 말이 갖는 의미와 그 느낌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는 우리말을 쉽게 떠올릴 수가 없다. 그나마 가장 근접한 뜻을 가진 어휘가 "낡은"이라서 저자도 이 말로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낡은"만으로는 "빈티지"의 감성을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 "비록 낡았지만 손 때가 묻었기에 더욱 가치를 더하는" 정도가 내 나름의 "빈티지"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축약할 수 있는 적당한 우리말이 마땅치 않으니 "낡은"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도 나처럼 그런 아쉬움을 느꼈으려나?

 

내가 이 "낡은"이란 말에 자꾸 부족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 책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일본 특유의 문화-낡은 것을 존중하고 소중히 하는 마음-때문이다. 일본의 가업이나 전통을 잇는 문화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문화가 결국은  도시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전통이 곧 그 나라의 특색을 좌우하는 문화가 된다는 것! 우리도 이 점은 충분히 자각하고 있지만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느라 자꾸 새로운 것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전통을 등한시 하게 된 점도 없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비교적 그들의 전통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 흩어진 날들>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래서 현재와 과거의 일본을 동시에 만나고 있는 기분이다.

 

보통의 경우 나는 여행 에세이에서 사진을 매우 중요시 한다. 휘리릭 대충 사진만 훑어봐도 그 나라가 가고 싶을만큼 멋진 풍경이 담긴 여행 에세이는 왠지 믿음이 가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우리 흩어진 날들>의 사진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아... 사진이 너무 서툴잖아. 게다가 흐린 날만 골라 찍은 것처럼 왜 이렇게 어두운 사진들 뿐인거야...'였다. 이런 적잖은 실망감을 안고 그녀의 글을 만났다. 여기서 반전을 노린다면 "의외로 글이 너무 좋아서 사진까지 덩달아 좋아 보였다"가 되어야 하겠으나, 그녀의 자유롭게 써 내려 간 일기 같은 글들도 마음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을 계속 붙잡고 있게 한 것은 바로 저자의 이러한 '서툰' 고백들이었다.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화보 같은 풍경 대신 그녀의 사진은 내가 만약 그 도시를 여행한다면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며 찍었을 법한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보며 한 때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 생각나는대로, 느낌나는대로 끄적였을 법한 글들이 곧 그녀가 적은 글들이었다. 따라서 <우리 흩어진 날들>의 서툴고 투박함은 이 책의 단점이 아니라 매력에 가깝다. 그래서 그녀의 여행은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여행이었음을 책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처럼 언젠가는 나의 서툰 고백들도 이렇게 예쁜 책으로 묶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부러움을 끝으로 그녀와의 일본 여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