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흩어진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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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표지와 제목이 예뻐서 손보다 눈이 먼저 간 책이다. 일본 여행 에세이라고 하더니 그 내용에 걸맞게 표지에서부터 핑크빛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책의 내용까지 살펴보고 나서는 저자 강한나가 전하는 일본 구석구석의 이야기에 매료되고 말았다. 이 책의 저자를 나는 그간 전혀 알지 못했다. 따라서 이 책이 그녀와의 첫만남과 다름 없었다.
저자는 일본의 대표 도시들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 교토, 오사카, 나가사키, 고베, 나라, 히로시마를 여행하며 일본 여행 중에 본 것들은 카메라에 담고, 생각한 것들은 글로 풀어 놓았다. 특이한 점은 도시들을 연속하여 돌아본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한 곳씩... 그래서 분리된 각 도시의 이야기들은 일본을 형성하는 펴즐 조각들처럼 제 나름의 모양과 색깔을 띠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일본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저자는 일본의 "빈티지" 즉, "낡은"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부제에서도 "빈티지 감성 여행에세이"라고 친히 이 책을 짧게 설명하고 있다.
가급적 언어 순화 차원에서라도 외래어 보다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빈티지"라는 말이 갖는 의미와 그 느낌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는 우리말을 쉽게 떠올릴 수가 없다. 그나마 가장 근접한 뜻을 가진 어휘가 "낡은"이라서 저자도 이 말로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낡은"만으로는 "빈티지"의 감성을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 "비록 낡았지만 손 때가 묻었기에 더욱 가치를 더하는" 정도가 내 나름의 "빈티지"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축약할 수 있는 적당한 우리말이 마땅치 않으니 "낡은"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도 나처럼 그런 아쉬움을 느꼈으려나?
내가 이 "낡은"이란 말에 자꾸 부족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 책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일본 특유의 문화-낡은 것을 존중하고 소중히 하는 마음-때문이다. 일본의 가업이나 전통을 잇는 문화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문화가 결국은 도시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전통이 곧 그 나라의 특색을 좌우하는 문화가 된다는 것! 우리도 이 점은 충분히 자각하고 있지만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느라 자꾸 새로운 것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전통을 등한시 하게 된 점도 없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비교적 그들의 전통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 흩어진 날들>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래서 현재와 과거의 일본을 동시에 만나고 있는 기분이다.
보통의 경우 나는 여행 에세이에서 사진을 매우 중요시 한다. 휘리릭 대충 사진만 훑어봐도 그 나라가 가고 싶을만큼 멋진 풍경이 담긴 여행 에세이는 왠지 믿음이 가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우리 흩어진 날들>의 사진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아... 사진이 너무 서툴잖아. 게다가 흐린 날만 골라 찍은 것처럼 왜 이렇게 어두운 사진들 뿐인거야...'였다. 이런 적잖은 실망감을 안고 그녀의 글을 만났다. 여기서 반전을 노린다면 "의외로 글이 너무 좋아서 사진까지 덩달아 좋아 보였다"가 되어야 하겠으나, 그녀의 자유롭게 써 내려 간 일기 같은 글들도 마음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을 계속 붙잡고 있게 한 것은 바로 저자의 이러한 '서툰' 고백들이었다.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화보 같은 풍경 대신 그녀의 사진은 내가 만약 그 도시를 여행한다면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며 찍었을 법한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보며 한 때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 생각나는대로, 느낌나는대로 끄적였을 법한 글들이 곧 그녀가 적은 글들이었다. 따라서 <우리 흩어진 날들>의 서툴고 투박함은 이 책의 단점이 아니라 매력에 가깝다. 그래서 그녀의 여행은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여행이었음을 책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처럼 언젠가는 나의 서툰 고백들도 이렇게 예쁜 책으로 묶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부러움을 끝으로 그녀와의 일본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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