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식탁 (양장) 박금산 | 민음사 | 20110311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이 책을 어찌하면 좋을까? 읽긴 읽었는데 막상 글로 옮기자니 암담하다.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이야기 정도로 상상했던 <아일랜드 식탁>은 그 보다 훨씬 더 암울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저자 박금산이 말하는 이 이야기를 진솔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부도덕하다고 해야할지 아직도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아일랜드 식탁>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막연히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4인용 식탁'과 달리 '아일랜드 식탁'은 혼자서 먹는 식사가 연상되는 탓이다. 적막함 속에 1인용 의자가 놓여진 책의 표지만 봐도 제목에서 내가 얻은 느낌이 책의 내용과 그리 동떨어진 것은 아님을 증명해 준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 책에는 시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 그리고 고아인 여고생과 담임 선생이 등장한다. 앞을 못 보는 레지나와 여고생 아녜스는 자매지간으로 작품 속에서는 욕망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선생 강민우와 야설 작가 세키는 각자 이 두 여성과 모호한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의 욕구를 충족해 나간다.
장애인의 성과 사랑에 대해 책이나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도 자주 다뤄지지 않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외면해 왔던 이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모자라 그들을 성적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남성들의 그릇된 욕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책의 제일 마지막 해설에도 나오듯 사회적 관습에 의해 장애인이나 미성년자인 여고생은 모두 보호 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들 모두 성적 주체로 등장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성인 남성들에게서도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주인공들의 사고방식은 독자로서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그 중에서도 강민우는 제자인 아녜스와 성적 관계를 유지하며 임신까지 시키지만 아이를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으며, 더욱이 그가 진심으로 욕망하는 대상은 아녜스의 언니인 레지나라는 점에서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다. 그리고 결말에 다다라 강민우가 행한 돌발적인 행동의 의미도 뚜렷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 작품의 마지막에 문학평론가 강유정의 적절한 해설이 있었기에 적어도 이 네 남녀의 기형적인 관계가 그들 각자가 가진 트라우마와 무관하지 않음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아울러 우리가 윤리적이다 혹은 비윤리적이다라고 평가하는 것들에 대한 재평가와 욕망을 감추기에 급급한 나머지 실질적으로 드러내 보인 욕망의 누춤함을 불편해 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어서 오히려 소설 본문에서보다 해설에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다시금 서로 다른 사람과 얽히게 된 이 네 남녀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마지막까지도 각자의 행복에 안도하는 모습을 보며 4인용 식탁은 그들의 집에서 영원히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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