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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걸스 - 꿈을 향해 당당히 마주 선 네 명의 소녀 자객!

by 푸른바람꽃 2009. 11. 15.

 

 

 

제목에 걸맞게 표지에서 부터 네명의 우스꽝스럽게 생긴 닌자걸스가 나를 맞이했다.

슬쩍 봐도 개성 넘치는 이 소녀들이 닌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은 부제에 나오듯이

[작전명 : 모란여고 심화반 폐지]였다.

 

심화반 이야기가 나오니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나의 학창시절을 추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지역에서 유일하게 두발자유(길이에 한하여..)에 교복까지 없었던 복장 자율

학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강남 못지 않는 교육열에 불타는 지역구에 위치한 덕분에 

성적까지 톱이었던 학교다. 그러니 이런 학교에 심화반이 없을리가 있나. 

 

우리 학교는 모란여고 보다는 커트라인을 조금 낮추어 전교석차 50등 이내의 아이들을 모아서

별도의 보충학습과 그들만의 자율학습이 이뤄졌었다. 나 역시 이왕 공부하는 거 심화반에 들 수

있을 만큼 잘하면 좋겠다는  목표가 없지 않았고, 전교 50등의 석차가 복도 정중앙에 게시되던

그 칠판에 내 이름 석자를 올려 놓고 싶었다. 그 때는 성적이 곧 나를 대표하는 등급이었고,

그 계급에 따른 특권의식이 자부심이 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러한 제도와 관행에 불평하기 보다

순응하는 쪽을 택했다. 무엇보다 내게는 굳이 그것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오락프로그램에서 아침밥을 먹고 등교하자는 취지로 '0교시 폐지'

운동까지 펼쳤지만, 프로그램 종영과 함께 '0교시'는 보란듯이 부활했고,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이 답답한 공교육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나약해 보이는 네 명의 소녀가 대체

무슨 힘으로 바꾸겠다는 건지... 내게는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케 했다.

더군다나 이번만큼은 다윗이 질 게 뻔한 싸움을 말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유쾌한 4인조 소녀떼

 

<닌자걸스>의 화자인 '나'는 '고은비'라는 자신의 이름이 너무 예뻐서 슬픈 17세 소녀다.

연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아역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과거를 뒤로한 채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오디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수학 잘하는 아이... 또한 네 명 중 유일하게 모란반에 속해 있다.

 

'나'의 절친1로 등장하는 지형이는 꽃미남 밝힘증에 걸린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다.

지난 학기까지 모란반에 있다가 성적하락을 이유로 퇴출 당해 모란반에 불만이 많다.

 

'나'의 절친2는 소울이다. 초딩으로 오해 받기 십상인 작은 키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우유를 물처럼 마시며, 특별 대우하는 모란반이 무조건 싫다.

 

'나'의 절친3으로 뒤늦게 합류하는 혜지는 '나'가 꿈꾸는 배우에 적합한 외모와 몸매, 착한 성격까지 겸비한 부잣집 딸이다.

그러나 신은 공평하게도 혜지에게는 공부 잘하는 능력은 주지 않았기에 반에서는 물론이고 전교에서도 독보적인 꼴지로

탄탄히 자리매김 하고 있다. 혜지는 모란반이 싫지도 좋지도 않다.

 

이처럼 개성 강한 네 명의 소녀가 모이게 되는 계기는 '나'의 꿈을 비롯한 각자의 목표달성을 위해서였다. 배우가 꿈인

'나'는 혜지의 영화감독 외삼촌을 통한 오디션의 기회를 얻고 싶고, 꽃미남 밝힘증인 지형은 혜지의 얼짱 남동생에게

접근하고자 하며, 영화광인 소울은 혜지네 외삼촌이 소장한 희귀 DVD를 욕심낸다. 그리고 이들의 아지트 제공과

목표 달성의 중심에 있는 혜지는 반 석차 30등 이내에 들지 못하면 당장 미국에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결국 혜지의

국.영.수 과외를 빌미로 각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모인 네 명의 소녀들은 이 책의 이야기를 이끄는 큰 원동력이 된다.

 

<닌자걸스>는 다분히 '나'가 주인공인 책이다. 그러나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세 친구가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맛깔나는 조연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게다가 학창시절 곁에서 봤음직한

내 친구들의 모습을 가진 그 아이들에게서 학창시절의 추억과 친근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어른들에게 무시당하는 10대의 설익은 꿈들

 

나의 10대를 돌아보면 이 아이들처럼 확고한 꿈이 있었던가 싶다. 그 때는 성적과 대학이 전부였고, 대학 입시 때 지원하는

전공이 곧 꿈이 되어버렸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만 생각했었다. 그에 비해

은비와 지형이의 모습은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친 에너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가족과 선생님들이 비웃기만 하는

그들의 꿈이 은비와 지형이에게는 당장의 공부보다 중요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엄마는 꿈은 잘 때나 꾸라고 하는데, 나 그거 싫어요.

 나, 배우 할 거에요. 정말정말 하고 싶어요!"  p.246

 

 "선생님, 제 노트 돌려주세요! 그거 정말 저한테 수중한 거에요!

  저에겐 시나리오가 전부에요. 작가가 되는 게 제 꿈이란 말이에요."  p.246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는데 나이는 무관하다. 그러나 우리는 10대의 꿈을 곧잘 무시해 왔었다. 어설픈 변명을 하자면

그 시기를 지나온 어른들이 보기에 10대의 꿈은 하룻밤 사이에도 몇 번은 바뀌는 한 때의 꿈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작 몇 달 저러다 말겠지... 어제는 연기자, 오늘은 아나운서, 내일은 소설가... 그렇게 시시때때 바뀌는게 10대의 꿈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분명 그렇지 않은 진지한 꿈도 있음을 어른들은 쉽게 간과한다. '은비'와 '지형'이는 그런 어른들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있다. 제발 우리의 꿈을 존중해 달라고......

 

 

꿈을 이루기 위해 넘어야 할 산, 엄마와 심화반

 

그러나 꿈을 이루기 위해 고난과 역경이 없을 수 없다. '은비'에게는 엄마와 심화반이라는 두꺼운 벽이 꿈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은비'의 엄마는 조금 별나지만 평범한 대한민국의 엄마다. 자식자랑이 삶의 낙이고, 자식 잘 되는게

이제는 엄마의 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은비' 엄마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심화반이 통과 의례와 같다.

 

왜 부모들은 자기 꿈을 꾸지 않고 자녀 꿈을 대신 꿔 주려고 하는 건지 답답할 뿐이다.

우리 엄마의 꿈은 의사 자식 보는 거고, 지형이네 엄마 꿈은 선생님 딸 두는 거고,

혜지네 엄마는 자식이 4년제 대학 가는거다. 나도 나중에 부모가 되면 그렇게 될까?

내 꿈 대신 자식 꿈을 꿀까?  p.156

 

부모가 자식의 꿈을 대신 꿔주는 사회가 된 데에는 자식을 통한 부모의 대리만족, 핵가족화에 따른 자식에 대한

과도한 욕심과 교육열, 부모와 자녀들 간의 단절 등 수많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이유로도 이것은

용납되기 힘든 문제다. 이 세상에 누구의 꿈을 대신 꿔주는 것 자체가 이미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숨이 콱 막혔다. 왜 내 인생을 엄마와 나눠야 하는 걸까?  p.223

 

그렇다. 꿈을 나누는 것은 인생을 나누는 것과 같다. 오로지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사춘기의

10대 소녀가 갖는 반항심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열망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닌자걸스들이 계획한

심화반 폐지작전은 똑같은 모양의 와플을 찍어내는 와플기계처럼 획일화된  우리나라 공교육 현실을 비판하는 동시에

어른들과의 소통을 가로 막고 있던 두꺼운 장벽을 허물기 위한 아이들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비록 닌자걸스의 작전이

뜻대로 되진 않았지만, 각자의 꿈과 목표에는 분명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서는 누구도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닌자걸스>가 던지는 꿈에 대한 이야기!

 

<닌자걸스>는 청소년 문학선이지만, 어른이 읽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그 나이 또래의 애들을 그대로 책에 옮겨 놓은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와 에피소드는 청소년들에게는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어른들에게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준다. 어쩌면 꿈을 잃고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더욱 권장할 만한 책인지도 모른다.

 

마치 드라마에서 강마에가 꿈을 이루라는 게 아니라 꾸기라도 해보라며 호통치듯, <닌자걸스>의 네 소녀들은

우리도 이렇게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여러분들도 꿈을 잃지 말라고 독려하는 것만 같다.

 

나 자신에게 좋은 '나'(p.251)가 되라고...

 

김혜정 작가의 톡톡 튀는 유머와 재기 넘치는 표현들 덕분에 읽는 내내 혼자 키득거리면 많이 웃을 수 있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닌자걸스들에게 흠뻑 정이 들어 버렸다. 어느새 은비, 지형, 소울, 혜지와 작별 인사를 나눌 때가 되자

철부지 같던 애들이 부쩍 대견스러워 보인다. 작가의 말처럼 '생각만큼 아이들은 나약하지 않다'.

 

 

어디선가 당당히 무대에서 자신만의 연기를 펼치고 있을 은비,

꽃미남 주인공이 즐비한 시나리오 작업에 열중하고 있을 지형,

무수히 들이켰던 우유 덕분에라도 0.5mm쯤 키가 자랐을 소울,

공부 보다 잘 할 수 있는 어떤 것, 새로운 꿈을 찾고 있을 혜지...

 

 

어디에선가 제 몫을 다하고 있을 이 아이들이 벌써 그립다. 

만나면 이 언니가 시원하게 피자 한 판 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