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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it now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 부르기만 해도 가슴에 사무치는 단 하나의 이름

by 푸른바람꽃 2009. 11. 15.

 

 

 

나는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서 손이 예쁘단 소릴 듣곤 한다.

 

아버지의 여성스런 손톱 유전자를 물려 받은 덕분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길고 반듯한 내 손톱...

지금 껏 살면서 험한 일이라곤 해 본 적 없는 듯 굳은 살 하나 없이 마냥 보드라운 손바닥...

아직 젊은 나이로 주름도 핏줄도 튀어나오지 않아 매끈한 손등까지...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내 어머니의 손이다.

 

이 책의 표지사진처럼 쭈글쭈글 주름지고 툭 튀어나온 핏줄때문에 손등에 고랑이 생긴듯 

울퉁불퉁 거친 그 손보다 아름답고 고귀한 손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해마다 겨울이 되고, 날씨가 쌀쌀해 지기 시작하면 내 어머니의 손은 수난을 겪는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돕느라 종일 손 끝에서 풀물이 마를 날이 없으시니 그 손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열 손가라락 중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모두 트고 갈라져 밤마다 핸드크림을 듬뿍 바르신 채

목장갑까지 끼고 주무시지만, 메마른 논바닥처럼 쩍쩍 벌어진 손 끝은 스치기만해도 고통스럽기 그지 없다.

 

그래서 책을 읽기도 전에 표지만 보고서도 나는 울컥 가슴 언저리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앞으로 몇 년 후면 사진처럼 늙어지실 내 어머니의 손이 한 없이 서러워서...

 

이 책은 유명 작가인 최인호가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머니에 관해 써내려간

자전적 가족소설로 지극히 아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어머니 상을 여과없이 그리고 있다.

 

그 모습은 그동안 딸로서 어머니를 바라볼 때와 비슷한 듯하지만 사뭇 다른... 어머니였다.

 

필자가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는 것은 역시나 살아 생전 좀 더 잘 해 드리지 못함이다. 

자식이 효도하려고 하나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는 옛 말처럼 가끔 내 어머니도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입에 담으시며 간담이 서늘해져 올 만큼 나를 협박하시곤 한다.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잘해라..."는 이런 소리를 하실 때면 나는 쓸데 없는 소리라며 되려 성질을 부리고,

쌩 돌아누워 버리지만, 속으로는 벌벌 떨며 무서워하는 어린애가 되어 버린고 만다.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

'소꿈장난 하며 놀던 골목길'...

 

이것이 바로 인생이지 않냐고 작가는 말한다.

 

아빠, 엄마, 오빠, 누나, 동생... 이렇게 다정히 서로를 부르며 재미있게 놀다가

"이제 그만 들어와 밥먹어라~"하는 하늘의 부름이 있으면 이 낯선 골목길을 떠나

마치 집으로 되돌아 가는 것... 이것이 삶이고 죽음인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죽음이 참 편안하게 다가왔다.

천상병 선생의 삶은 '소풍'이란 시구보다 더 편안히 말이다.

 

내 어머니도, 내 아버지도, 오빠도... 그리고 나도 어쩌다 이 생에서 서로가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며

함께 살고 있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이 골목길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올지라도 내 어머니에 대한 마음만은 갖고 갈 수 있길...

그래서 다음 생애에는 내가 받은 사랑의 반만이라도 꼭 되돌려 드릴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래 본다.

 

 

어젯밤 엄마가 친구에게 짧은 편지를 쓰셨다.

 

줄줄이 딸린 어린 동생들 공부시키느라 정작 당신은 어린나이에 학교 대신 여공으로 취업하느라

제대로 배움의 기회조차 갖지 못 하셨다. 그래서 엄마의 손글씨는 여전히 초등학생 마냥 삐뚤빼뚤했고,

구어체로 그냥 써내려가 맞춤법도 엉터리였지만, 나도 엄마에게 편지 한 통 받아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오빠는 군에 있을 때 간혹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편지를 받았는데,

난 그런 적이 별로 없으니 그런 것조차 이제 욕심이 났던 것이다.

 

언젠가 코메디언 이홍렬이 '낭독의 발견'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남기신 편지를 다시 읽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는데, 최인호 작가 역시 십 오년 전 어머니의 편지에

다시금 어머니를 생생히 추억하는 모습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책 내용 중 작가와 그의 어머니 모두 천주교 신자인 탓에 종교적인 내용이 전체적으로 깔려 있어

불교신자인 내가 읽기엔 조금 생소한 내용도 없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사진도 내용도 따뜻하다.

 

 

 

신경숙 작가가 쓴 <엄마를 부탁해>와는 또 다른 느낌의

이 세상 아들들이 들려주는 우리의 어머니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