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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it now

백야행 - 하얀 밤을 걷다

by 푸른바람꽃 2009. 11. 15.

 

 

 

내가 백야행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잠시 일드에 빠져 있을 무렵이었다.

워낙 일드계의 전설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최근 백야행의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된 것은

고수, 손예진, 한석규 주연의 국내 영화로 리메이크 된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을 때였다.

 

한번은 봐야겠다고 생각한 작품인지라 처음에는 일드로 가볍게 만나보려 했지만,

이 작품이 용의자 X의 헌신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이란 것을 안 순간...

이건 꼭 책으로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용의자 X의 헌신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된 히가시노 게이고는 범죄 스릴러를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에 걸맞는 작품들로 나를 기쁘게 해 줬던 작가다. 그럼에도 나는 왜 지금껏 그를 알지 못했을까...

그것은 그동안 내가 접해왔던 수많은 일본 드라마와 영화 중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늘이 얼마나 넓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야행을 계기로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면서 이미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대표작들을 만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탐정 갈릴레오, 용의자 X의 헌신, 유성의 인연, 편지, 비밀, 그리고 백야행까지...

이처럼 히가시노 게이고는 내게 익숙한 작품들의 원작자이면서도 작가로서는 낯선 존재였다.

 

그 중 유일하게 책으로 만나 본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백야행을 통해서 보자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서 사랑은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사랑 하나를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고, 자신의 인생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남자들을 보며...

그 사랑... 참 잔인하다 싶었다.

 

분명 용서받지 못할 범행을 저지르는 주인공들이지만, 그들의 범죄가 살 떨리게 무섭다가도

결국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나머지 그것이 삶의 방식이 되어 버린 것에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태양 아래서 낮을 살아보지 못한 료지와 유키호.

그러나 그들에게는 까만 밤을 하얗게 밝힌 서로가 있어서

한 번도 어둡지 않았다는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유키호...

그녀에게 료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녀에게도 진정 사랑이었을까?

마지막 구절을 읽으면서까지 속 시원히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었다.

 

이런 부분은 오히려 일드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책을 다 읽은 후 연속해서 일드까지 섭렵하고 나니 책과 드라마의 장단점이 적절히

혼합되면서 내가 생각하는 백야행이라는 큰 그림이 조금씩 완성 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드라마에서는 인물의 이름이 얼굴과 매치되면서 그나마 등장인물의 식별이 쉬웠으나,

책에서는 그 많은 인물들을 이름과 특징별로 기억해 두느라 진땀 흘렸다.

 

유난히 많은 등장인물들이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얽히고설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지만, 그것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인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밤마다 백야행의 악몽에 시달렸다.

늘 잠들기 전 머리 맡에 두고 읽어나가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이제 앞으로 개봉할 우리 영화까지 만나고 나면

백야행의 완성된 그림을 마주할 수 있게 되진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