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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it now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by 푸른바람꽃 2011. 7. 10.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양장)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양장)
박범신 | 문예중앙 | 201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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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작가의 소설들은 첫 문장의 강렬함이 늘 남다르다. 이번 신작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역시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짧은 문장 - "이것은, 아마도 살인에 관한 긴 보고서가 될 것이다." - 으로 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살인에 대한 보고서라니 누가 왜 살인을 저지르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책의 제목과 표지에서 등장하는 기괴한 말굽의 형상이 낙인을 찍은 듯 잊혀지지 않았다.

 

세상 풍파에 시달리며 떠돌던 주인공 '나'는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 흘러간 시간만큼 달라진 풍경에 어리둥절해 하며 그가 숨어든 한 오피스텔 옥상에서 그는 비범한 용모와 분위기를 풍기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범상치 않은 용모를 가진 것은 '나'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남자는 처음 본 '나'에게 숙식과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 날부터 "샹그리라"로 불리는 오피스텔 관리인이 된 '나'는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의 목격자이자 연이은 살인 사건의 은밀한 가해자가 된다.

 

어느날 찾아든 낯선 이방인인 '나'는 '이사장'이 건설해 놓은 왕국의 작은 귀퉁이부터 조금씩 허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는 '이사장'의 왕국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간다. '나'의 위태로운 행보는 종국에 가서는 무차별적 살인 행각으로 치닫고 작가는 그 행위의 주체인 '나'와 '말굽'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결국 '말굽'은 살인의 도구로 형상화 되어 있지만 그것은 곧 '나'의 마음이었다.

 

"(중략) 그리고 살인도구로 무엇을 사용했던 죽이는 것은 소이며 손은 마음에 따른다. 마음이다." P.22

  

그렇다면 '나'는 어찌하여 잔인무도한 마음(말굽)의 노예가 되고 말았는지 궁금해진다. 그 과정에 대해서 책에서는 끊어지고 이어지는 '나'의 기억들을 토대로 '나'의 흘러온 인생을 보여준다. 폭력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에서 어느날 갑자기 손바닥에서 자라기 시작한 말굽은 폭력에 길들여진 그의 마지막 몸부림과 다를 바 없었다.

 

"(중략)슬픔이란, 어떤 슬픔이 없었다. 내겐 탄생 이전부터 전해져온 슬픔뿐이었다." p.341

 

지독한 슬픔에 잠식당한 그가 어떤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살인을 행하는 모습은 순수함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어린시절 그의 첫사랑 '여린'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모든 것의 끝과 시작이 될 '죽음'의 밤이 깊어감으로써 '나'의 손이 '말굽'으로 변하게 된 이야기는 일단락이 된다. 허울 좋은 말에 속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의 약점을 노려 자신의 배룰 불리는 사람들, 돈과 권력의 시녀가 되어 욕망을 쫓는 사람들의 추악한 단면들이 담담하게 그려진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진흙탕 속에서도 고운 빛깔의 연꽃이 피듯 이 작품에서 '나'와 '여린'의 사랑은 독립적인 이야기로 살아 숨쉬는 듯 했다.

 

살인의 기록은 행위의 주체가 사라짐으로써 끝이 나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만큼은 예외다. 살인의 주체, 우리의 마음에 꿈틀거리는 살인 본능인 '말굽'은 지금도 어디선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 사회의 살인과 죽음은 계속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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