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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by 푸른바람꽃 2011. 11. 20.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양장)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양장)
오가와 요코, 권영주 | 현대문학 | 201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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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독특한 책이다. 우선 제목부터가 그 내용을 짐작도 할 수 없게 하였거니와 본격적으로 책을 읽으면서도 마치 표지의 소년처럼 코끼리의 꼬리만 잡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줄거리나 주제를 파악하겠다는 생각조차 잊고 그저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는 한국 독자에게도 꽤 유명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저자 오가와 요코의 작품이다. 그런데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책이 아닌 영화로만 본 탓에 나는 그녀의 작품을 읽어다 말할 수 없었다. 오가와 요코의 글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는데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는 아이다운 환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체스의 세계로 안내한다.

 

체스는 이 작품으 매우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리틀 알레힌'으로 불리는 주인공 소년에 버금가는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체스를 두는 방법이나 말의 이름 등 아는 것이 전무한 상태에서 처음 체스가 등장하기 시작할 때는 이해하지 않고 활자로만 읽고 넘겼다. 그런데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리틀 알레힌'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동안 그의 체스 실력도 함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면서 스스로도 체스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비로소 책의 첫 장에 등장했던 체스판과 말들, 그리고 이동이 규칙 등을 다시 읽어 보게 되었다.

 

날 때부터 입이 붙어 있어 울음조차 터트리지 못했던 소년.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분리하기 위해 정강이 피부를 이식하였고 어쩔 수 없이 입술에 정강이 피부의 털이 자라는 소년. 그의 유일한 친구는 상상 속의 소녀 '미라'-나중에는 실재로 미라라 부를 수 있게 된 친구가 생기지만-와 백화점 옥상에서 살다간 코끼리 '인디라', 그리고 그에게 체스를 가르쳐준 스승 '마스터'가 있다. 이 세 친구의 공통점이라면 몸집이 커서 좁은 공간에 갇혀버린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갇혀 있던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커지는 것은 곧 비극'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소년은 자신의 몸이 커지는 것조차 극도로 두려워하고 그는 20대가 되어서도 열한 살 소년의 몸에 머무른다.

 

유난히 작은 몸집에 기가막히는 체스 실력을 가진 이 소년은 나중에는 체스 인형의 탈을 뒤집어 쓰고 그 안에서만 체스를 둔다. 마치 그라는 존재는 사라진 양 어둠 속에서 오로지 체스만을 두는 소년에게 64칸의 흑과 백 격자 무늬 체스판은 책에서처럼 그가 유일하게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넓고 깊은 바다와 다름 없다. 그의 인생에 체스가 없었다면 그리고 그 체스를 가르쳐준 이가 '마스터'가 아니었다면 소년의 삶은 더욱 황량했을 것이다. 인생의 스승이었던 '마스터'와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도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소녀 '미라'와 소년의 깊은 우정은 이 작품 전반에 걸쳐 온기를 전해 준다.

 

이 책의 결말은 우리에게 비극일 수도 있지만, 소년에게는 어쩌면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온몸의 관절이 경직되는 아픔이 따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치 어머니의 뱃속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 좁고 어둡지만 눈을 감으면 세상 어느 곳보다 넓고 깊은 바다로 바뀌는 그 곳에서 소년은 과연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의 체스 게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만 같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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