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Matsumoto Seicho), 양억관 | 이상북스 | 20111121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해 즐겨 읽는 편이다. 그러나 주로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 현대 작가의 작품들만 편식해 온 탓에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명성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가 주로 작품 활동을 했던 시기가 지금으로 부터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그의 작품에서 시대적 배경을 1950년대 경이다. <제로의 초점> 또한 1950년대 후반 일본 북부 지역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갑작스런 실종 사건으로 시작된다.
우선 이 책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영화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번역서의 제목은 <제로의 초점>이지만 이 작품이 내게는 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영화 <제로 포커스>로 더 친숙하다. 제목이 조금 달라서 처음에는 영화의 원작이란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뻔 했으나 알고보니 2009년이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이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영화화 했단다. 만약 같은 작품의 영화와 소설 두 종류의 텍스트가 있다면 나는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본다. 다행히 영화는 제목과 내용만 대강 알고 있는 정도였기에 책을 읽으며 추리소설의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작품 속 시점이 1950년대 후반인 점을 감안하면 여주인공 데이코의 맞선과 초고속 결혼은 결코 비상식적이지 않다. 선을 보고 상호 동의하면 이후 바로 결혼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상식적이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혼은 예나 지금이나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한다. 결혼한 상대방에 대해 남보다도 모른다는 것. 그 혹은 그녀의 친구들은 아는 사실을 배우자인 자신은 전혀 모를 수도 있다는 점은 중매로 인한 속전속결 결혼에서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다. 그러니 데이코에게 남편 겐이치는 타인과 다를 바 없었고, 짧은 신혼여행으로 그와 조금 친밀해졌다고 느껴질 찰라, 그는 최근까지 지방에서 근무했던 탓에 현지 업무 인수인계와 신변을 정리하러 잠시 출장을 떠난다. 역에서 남편을 배웅하던 데이코는 설마 그게 남편과의 마지막 인사가 될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출장을 떠난 후에도 그곳에서 엽서를 통해 자신이 언제쯤 돌아오겠으니 짐정리도 혼자 하지 말고 기다리라 당부했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 회사나 집으로 연락 한 통 없었고, 온데간데 없이 남편은 사라졌다. 남편을 찾아 떠나는 데이코의 불안한 심리를 저자는 놓치지 않았다. 그와 함께 미스터리한 남편의 실종사건과 남편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던 일본 북부 지역의 황량한 겨울 풍경이 묘하게 결합되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겐이치의 실종에 이어 그의 실종사건을 조사하고 다녔던 소타로(겐이치의 친형)와 혼다(지방 근무지에서 겐이치의 후임자)가 같은 방법으로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긴장감과 흥미를 더한다. 독자들은 데이코가 되어 사건의 범인을 추리해 나가고 용의자는 두 명으로 압축되는 듯 하다고 마지막에 이르러 진짜 범인을 밝혀낸다. 문제는 왜 그런 범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가였다. 마쓰모토 세이초를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부른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범인의 범행 동기때문인 듯 하다. <제로의 초점>에서는 1950년대 패전 이후 다수의 미군들이 일본에 들어와 있던 상황에서 매춘으로 생계를 잇던 여성들의 삶과 그 여성들의 어두운 과거가 그녀들에게는 무엇보다 더한 공포였음을 보여주었다.
저자나 역자의 말도 없이 본문의 마지막 문장이 결국 책의 마지막 마지막 문장이라 허전함과 여운이 남는다. 그러나 덕분에 마쓰모토 세이초에 대해 더욱 궁금해 진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영화 <제로 포커스>를 통해 작품 속 데이코가 낯설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으로 마주한 가나자와를 시각적으로 만나보고 싶다.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으나, 책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담은 진솔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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