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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의나 할까?

by 푸른바람꽃 2011. 12. 17.
우리 회의나 할까? 우리 회의나 할까?
김민철 | 사이언스북스 | 201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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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라는 직함으로 수년간 근무하며 회의는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하던 일과였다. 가장 기본적으로 아이데이션이라고 하는 아이디어 회의부터 카피팀 내에서의 팀회의를 비롯해 기획파트와 제작파트의 부서간 회의, 매주 월요일에 하는 직원 회의 등 틈만 나면 회의를 했다. 회의의 성격에 따라서는 말이 회의지 그냥 앉아서 듣고만 있어도 되는 자리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이 말도 하고 저 말도 하며 시끌벅적 떠들다가 결국 다음 회의 때까지라는 말을 끝으로 회의를 접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몇 차례 회의를 하다보면 누구의 입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왔는지도 모르는 아이디어란 녀석을 만나게 되고 그것을 붙잡고 다시금 회의를 거듭하는 묘미가 있었다. 반면 이직 후 지금의 직장에서는 광고회사 때만큼 회의를 자주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회의 때마다 힘들고 지치는 기분이다. 그래서 어느새 나는 회의에 회의(懷疑)를 느끼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회의는 하면 뭐하나...'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오는 지경에까지 이른 내게 이 책은 제목-우리 회의나 할까?-부터가 비호감이었다. 그런데도 궁금했다. 도대체 그들의 회의는 우리의 회의와 무엇이 다른지, 특히 광고쟁이들이 선망하는 몇 안되는 광고대행사인 TBWA KOREA의 회의록이라지 않는가! 마치 경쟁사의 대외비 문서를 몰래 보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한 때의 나를 떠오르게 하는 현직 카피라이터가 저자라는데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하는 책이었다. 광고회사에 입사 하자마자 내게 떨어진 첫 임무 역시 회의록 작성이었으니 말이다. 책을 몇 장 넘기지 않았는데 프롤로그에 예사롭지 않는 글이 등장했다. "회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에 대한 것이었다. 한참동안 들여다 보며 모름지기 어떤 형태의 회의든 그 자리에 참석자들은 이 책에서 말하는 7가지 회의의 기본 원칙을 사전에 숙지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 이런 기본 마음가짐만 있다면 회의는 결코 시간낭비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회의록 쓰기에 소질이 있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TBWA KOREA가 이끌었던 대표적인 광고캠페인 사례를 중심으로 그들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탄생되었고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어떤 형태의 광고로 노출되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처음 캠페인을 접했을 때 너무 재밌어서 실제로 책자를 구해서 꼼꼼히 읽어 봤던 기억이 있는 SK텔레콤의 현대생활백서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마치 내가 프로젝트 팀원이었던 것처럼 생생하다. 그리고 회의를 마치고 다음 회의까지 자신이 해야할 일을 모르는 것만큼 회의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LG엑스캔버스 PT 준비 회의를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용어부터 생소하여 한참을 헤매야 했던 SK브로드밴드 광고-사실 나는 이 캠페인이 경쟁PT에서는 승리했을지 모르지만 광고로서의 성공에는 의문이다-와 주택광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되는 대림 e편한세상의 PT 비하인드 스토리가 이어진다. 이 중 광고쟁이였던 시절 주택광고라면 지겹도록 해 온 내게 대림 e편한세상의 광고캠페인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집을 한낱 공산품이 아닌 사람이 있는 공간이자 문화로 보는 회사의 기업 이념, 경영 철학 등이 역시 좋은 광고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세상에 결코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광고주 대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각각의 챕터 마지막에는 이 책이 가진 비장의 무기 '수상한 회의록 다시보기'가 등장한다. 과거 내가 작성했던 회의록은 회의에서 나온 말을 받아적는 서기관 기록에 지나지 않았다면 저자의 회의록은 회의에서 도출된 의견과 광고의 방향, 다음의 할 일 등이 복합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과장을 좀 보태자면 이 회의록만 쥐고 있어도 해당 프로젝트의 흐름을 완전히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TBWA KOREA가 경쟁PT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그들만의 회의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남의 회사의 회의였지만 그들의 회의 풍경을 보며 우리의 회의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점검하는 기회가 되었고, 더 늦기전에 회의록 작성의 좋은 예를 만날 수 있어서 유익했다.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으나, 책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담은 진솔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