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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 그래도 서른은 온다...

by 푸른바람꽃 2009. 11. 15.

 

 

 

스물 다섯의 나이를 넘기면서 내가 두려워 했던 것 중 하나는 서른의 내 모습이었다.

그 때의 내가 서른의 나를 상상하기란 SF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것 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그런 나를 '달콤한 나의 도시'로 데려다 놓고 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서른의 나에게로 간 기분이었다.

 

나와 많이도 닮은 모습의 오은수.

그녀의 직장생활은 마치 카피라이터란 명함을 들고다니던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가 만난 은수는 가장 친한 친구였고, 언니였으며, 나였다.

 

서른 한 살의 그녀는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고민을 여전히 끌어 안은 채 살고 있었다.

 

사랑, 결혼, 직장... 2030여성들의 가장 큰 관심사라 할 수 있는 이것들에

이렇다 할 해답 대신 여전히 깨지고 부딪히는 가련한 모습이었다.

 

지금껏 내가 서른의 나를 떠올리며, 한 가지 위안 삼은 것이 있다면

그 때쯤엔 뭔가 분명해져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였다.

 

지금처럼 서리 낀 뿌연 유리창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윈덱스로 깨끗히 닦아

손만 뻗으면 저 너머의 세상도 만져질 것 같은 선명한 미래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구 종말이 올거라던 1999년 12월 31일 밤이 지나도 어김없이

2000년의 해가 뜨고, 지구는 여전히 조금 삐딱하게 기울어져 돌아가고 있듯이,

스물아홉이 하룻밤 자고 서른이 된다고 해서 세상이 뒤집혀 지진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서른 살,

그 땐 분명 허물을 벗고 멋진 나비가 되어 있으리란 허무맹랑한 꿈을 버릴 수 없다.

 

획일화된 정규교육 과정의 졸업과 동시에 찾아온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 날 이후 나는 한 번도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항상 한 뼘쯤 둥둥 떠 있는 기분이다.

 

한 가닥 잡고 있는 끈만 놓아도 저 멀리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그래서 자꾸만 어딘가에 매달리고, 붙잡으려고 아둥바둥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위태로움이 싫어져 이제 내 발을 땅에 꽁꽁 묶어 두고 싶고, 그게 결혼이 됐건 확실한 직업이 됐건

더이상 앞날에 대한 걱정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며 휙 던지고 싶었던 적도 많다.

 

442쪽 작가의 말을 끝으로 책을 덮으면서,

읽는 내내 오은수의 삶을 엿본 것이 아니라 진실로 내가 나의 미래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역시나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이미 열어 젖힌 판도라의 상자에서 내가 본 건 과연 무엇일까?

오은수를 거울 삼아 나는 그녀처럼 되지 않기 위해 다시금 있는 지 없는 지도 모를

나의 잠재력을 발견하기 위한 자기계발에 매진해야 하는 걸까?

 

미해결 수학 난제들 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이 문제에 대해

언제쯤 나는 명쾌한 답을 내 놓을 지 알 수 없다.

 

다만 묵묵히 서른의 나를 향해

오늘도... 하루 하루... 살아나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