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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by 푸른바람꽃 2012. 3. 18.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이병훈 | 문학동네 | 201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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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숙제를 덜 한 학생처럼 조바심이 난다. 꼭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워주는 그의 작품들을 아직까지도 미루고 또 미뤄두고만 있다.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나와 도스토예프스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 보다 그를 먼저 알고 싶었다. 그를 알고 나면 이 두려움도 어쩌면 그에 대한 이해와 관심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따라서 이병훈 교수가 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는 내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닿기 위한 튼튼한 징검다리와도 같았다.

 

러시아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저자에게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처럼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름만 알고 있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알리고 그의 책 위에 켜켜히 쌓인 먼지를 털어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러시아로 다시 떠난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발자취를 따라 그의 흔적을 찾고 그것을 글과 사진으로 독자들에게 꽤나 자세히 소개해 주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생을 추적하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은 경제적인 궁핍함으로 인해 잦은 이사가 불가피했고 그가 머물던 곳은 대부분 도시 외곽의 변두리 지역들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사춘기 무렵 어머니를 여의고 2년 후에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그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사람은 형 미하일이었다. 형은 그의 문학적 동지이자 후원자였는데 훗날 그와 그의 형은 문학지를 창간, 발행하기도 했다. 러시아 문학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고 형제에게는 그 어떤 일보다 열과 성을 다했지만 이 잡지 사업은 결국 큰 빚을 남겼고 훗날 미하일이 갑자기 죽은 뒤 이 빚은 고스란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족쇄가 되어 죽기 전까지 그를 구속하게 된다.

 

타고난 재능이 있었고 그 재능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 덕분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의외로 쉽게 작가의 길로 들어선 듯 보였다. 그러나 작가로서 활동 범위를 넓혀가던 즈음 서클 활동 중에 당시 낭독 자체가 금지돼 있던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끼의 편지>를 읽어 옴스끄 감옥에 수감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처형장에 끌려가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된 도스토예프스키. 여기서 그가 죽음을 맞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세기에 남을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극적으로 살아남아 돌아온 그의 이어진 삶 또한 그리 순탄치 못했다.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지만 그녀와 신혼여행 중 고질병이었던 간질 발작을 일으켜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이후 그의 첫 번째 결혼은 불행하게 마감한다.

 

계속 작품활동을 하였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고, 이 때 형 미하일과 잡지를 창간하는데 이 역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중에는 이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그리고 미모의 여인 수슬로바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남성편력이 심했던 그녀에게 상처를 받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무렵 도박에 중독되어 방탕의 늪에 빠져든다. 그리고 형의 죽음은 그에게 더할 수 없는 슬픔을 안겨 주었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던 이 무렵, 절망 뿐이었던 그에게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의 만남은 운명이자 축복이었다. 그녀와의 결혼 이후에도 그의 간질발작이나 도박 습관은 여전했지만 끝까지 사랑과 인내로 그를 포용하는 안나의 모습은 그녀가 남긴 회고록의 인용 부분에 잘 드러나 있었고 매우 인상적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살았던 집이나 쓰던 물건, 작품에 실렸던 삽화, 그의 초상화, 그리고 그가 좋아했던 그림 등을 컬러 사진과 자세한 설명으로 접할 수 있었던 점은 여느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 책만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가가 작품을 쓰던 당시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고, 그래서 어떤 심경이었을지 알게 된 후 그 때 쓰여진 작품의 발췌 문장들을 읽게 되니 그제야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이 보다 가깝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예술은 항상 동시대적이고 현실적이며, 그 외의 다른 방식으로 존재해 본 적 이 없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p.148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술관이 담긴 이 말은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여 드러난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현실적 상황의 그의 작품 곳곳에 녹아있고, 러시아의 시대적 상황 또한 그는 간과하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위대한 것은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세기가 지나도록 인류가 공감하는 뛰어난 문학 작품으로 완성해 냈으며 그 속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고귀한 가치를 드러내 보였다는 사실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누구보다 아픔이 많았던 작가였고,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백치>에서 미쉬낀의 입을 빌려 반복적으로 되뇌었다는 말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는 작가가 굳게 믿었던 마지막 희망이지 않을까? 그의 곁에서 항상 함께해 준 아내 안나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쁘레끄라스니(외형적, 내면적 아름다움 모두를 뜻함, p.229)"의 실재였을 것이다.

 

러시아 여행서 같기도 하고 문학해설서 같기도 하며 도스토예프스키 평전 같기도 하다. 그만큼 다양한 매력과 풍부한 지식 및 정보가 가득한 책이란 뜻이다. 길 모퉁이 집 창가에 서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러시아 민중들의 삶과 시대의 변화를 목격했던 도스토예프스키. 이제는 두려움을 걷어내고, 내가 그의 세계로 걸어 들어갈 차례이다.

 

 

 

 

※ 본 서평은 출판사의 제공 도서를 읽고 책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과 생각을 진솔하게 담아 작성한 것입니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