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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it now

수비의 기술

by 푸른바람꽃 2012. 6. 22.
수비의 기술 1 수비의 기술 1
채드 하바크(Chad Harbach), 문은실 | 시공사(단행본) | 201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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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7일, 2012 한국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개막됐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시즌 개막을 손꼽아 기다렸을테지만, 나처럼 야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시즌 중에도 야구장 한 번을 찾지 않는다. 너댓 살 무렵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다녀와 본 이후 성인이 되어서는 딱 한 번 야구장에 갔었다. 삼성과 두산의 경기였는데 그 때만큼은 '아... 이래서 스포츠 경기는 경기장에서 봐야 제 맛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옆 사람이 귀찮을 정도로 야구의 명칭과 규칙을 물으며 경기 관전에 몰입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야구는 순식간에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그런 내가 야구를 소재로 한 소설 <수비의 기술>을 읽기로 마음 먹은 것은 순전히 책의 띠지 광고 문구때문이었다.

채드 하바크의 이 작품은 결론적으로 야구 소설이라기 보다 등장인물들의 성장 소설이고, 각자의 인생에서 방황하던 짧은 시기를 잘라 놓은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법한 드라마틱한 야구 승부를 다룬 스포츠 소설을 기대하고 읽어나갔다. 그러나 읽다 보니 손에 땀을 쥐는 스포츠 경기 대신 주인공 헨리의 성장과 그를 발굴한 마이크, 룸메이트 오웬, 그의 동성 연인이자 이들이 재학 중인 웨스티시 대학의 총장 어펜라이트, 어펜라이트의 딸 펠라 등 주요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이들의 사랑, 우정, 스포츠맨십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을 읽기 전만 해도 나는 헨리의 포지션인 유격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팀의 승리에 도움을 주는 지 몰랐다. 그러다 이내 유격수야 말로 내가 야구 경기를 보며 가장 짜릿함을 느꼈던 병살의 핵심임을 알게 됐다.

겉모습과 달리 천재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능력을 보여줬던 헨리. 그러나 한순간 실수로 친구 오웬이 부상을 당하자 헨리는 슬럼프에 빠져 더이상 경기를 해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 한다. 그리고 헨리의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 오던 마이크는 야구 선수로서의 비전은 없다는 판단 하에 로스쿨을 지원하지만 그 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한편 오웬은 예순 살의 총장 어펜라이트와 동성애에 빠지고, 뒤늦게 찾아온 아들 뻘 되는 학생과의 사랑이 당혹스럽기는 어펜라이트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헨리와 마이크 사이에는 결혼에 실패하고 진지한 사랑을 믿지 않는 펠라가 끼어 있다.

어찌보면 전형적인 미국식 문화와 사고방식이 농후한 작품이라 이해되지 않는 면도 많다. 그러나 야구 경기에 빗대어진 우리들의 삶은 일정부분 공감대를 형성한다. 순간의 실수에 트라우마를 갖게된 헨리나 결혼의 실패로 사랑을 두려워 하는 펠라는 어떤 면에서는 무척이나 닮았다. 또 마음 먹은 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듯 인생 역시 뜻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음을 마이크를 보며 깨닫는다. 언제나 경기는 예측불허이고 선수가 마운드에서 잠시 내려온다고 그것이 경기의 끝은 아니라는 것도 인생과 어딘지 닮은 것 같지 않은가? 누군가에게는 오웬과 어펜라이트의 사랑이 납득되지 않을 것도 같다. 그러나 마지막에 어펜라이트를 위해 이들이 다함께 벌이는 일을 보며 그리고 오웬의 말과 행동을 보며 펠라처럼 독자들도 이들의 사랑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의 기쁨, 실패의 좌절, 사랑의 고통 등 누구나 살면서 겪을 법한 일들을 채드 하바크는 그가 좋아하는 야구를 통해 풀어놓았는데 <IQ84>를 누르고 1위를 할 만한 작품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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