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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타임스 - 정보화사회, 지배할 것인가, 지배 당할 것인가!

by 푸른바람꽃 2009. 11. 15.

 

대학을 다니며 가장 좋아했던 강의를 꼽자면 영화론 수업을 빼놓을 수 없다.

평소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도 있지만, 영화론은 강의명에 100% 충실했던 강의였기 때문이다.

가끔 수강신청을 하다보면, '애니메이션의 이해'라는 제법 기대되는 강의명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학기 내내 애니메이션 한 편 보지 않고 말 그대로 애니메이션을 이해만 하다가 끝나는 강의도 허다하다. 그러나 영화론은 이론 강의뿐만 아니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암전된 넓은 강의실에서 스크린을 통해 보던 영화들은 제법 낭만적이었다. 그래서 지루한 이론 수업만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보다 평소 볼 수 없었던 시민 케인, 전함 포템킨 등과 같은 흑백영화들을 보는 것 자체가 내게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도 그렇게 만났다.

영화의 줄거리까지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찰리가 공장에서 일하던 모습이다.

 

쉴 새 없이 웃었기 때문인지, 그 시대의 신랄한 비판이 마음에 와닿았던 탓인지... 

컨베어 벨트에 붙어 서서 하루 종일 나사못을 조이던 찰리가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톱니바퀴에 끼어 돌아가는 와중에도 마치 기계의 일부인 양 나사못 조으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또렷하다.

 

이제는 산업화를 지나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나사못을 조이던 찰리와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자본주의와 산업화로 인간성은 무시되고, 인간이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해 버렸던 그 때와 달라진 것이라면 기계 대신 정보가 권력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와 일맥상통하는 이사카 코타로의 신작 <모던 타임스>는 지금 보다 조금 앞 선 미래를 배경으로 적당히 SF적 요소를 가미해 정보화 사회의 이면을 비판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인간에게 호기심이 없었다면 세상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와타나베와 고탄다, 오이시가 사건에 말려들게 된 것도 이 책이 말하는 '검색'에 앞서 나는 호기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호기심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서는 딱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하리마자키 중학교의 사건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때문에 와타나베는 본의 아니게 사건의 중심으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들게 되고 그럴수록 위험도 커진다. 대체 하리마자키 중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시시각각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와타나베는 이제 살아남기 위해 진실을 검색해 나간다.

 

 

호기심의 진화는 검색이다.

 

모르면 물어보는 것이 인지상정.

인터넷이 없었을 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때는 백과사전이란 녀석을 곁에 두었던 것이 떠올랐다. 집집마다 한 질의 백과사전을 두고, 지식 검색 숙제를 해결해 나갔었던 아날로그 방식에 비하면 요즘 아이들이 하는 숙제는 식은 죽 먹기라고 할 수 있다. 자판만 두드리면 끝이다. 그러면서 호기심을 참아내는 우리의 인내심도 없어졌다. 궁금하면 못 참고, 찾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검색으로 얻은 정보는 모두 진실일까?

백과사전에서 베껴쓰며 그 내용에 의심을 품었던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을 짜집기 할 때는 교차 검색이 필수다. 한 곳의 정보만으로는 믿을 수 없는, 최소한 두 세 곳 이상 같은 내용으로 검색 결과가 나와야만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정보의 옥석을 가리는 일이 다시 우리의 과제로 남게 된 것이다. 

 

 

검색된 정보는 양날의 칼과 같다.

 

따라서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은 이제 오롯이 검색한 사람의 몫이 됐다.

정보는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기까지 필수적으로 가공단계를 거친다. 일차적으로 그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한 사람을 거치고, 그 정보가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거치며 정보는 처음의 모습 그대로 일수도 있지만, 점차 왜곡되거나 변형될 우려도 높아진다. 의도적인 정보의 날조가 아니더라도 이처럼 전파되는 정보에는 어쩔 수 없이 허구와 과장의 때가 묻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 의도적으로 날조된 정보를 유포한다면, 우리는 속수무책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맨 처음 제공될 때부터 이미 날조된 정보였고 진실은 입막음 당했다면 실로 섬뜩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날조된 정보때문에 현대판 마녀사냥이 인터넷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애꿎은 생명이 희생되는 안타깝고 잔인한 일을 직접 겪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찾은 정보가 내 손에 칼을 쥐어주기도 하지만, 한순간 방심하면 어느새 내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정보화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사람도 진화하고, 정보도 진화하며, 시스템도 진화한다.

본래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들 스스로 살아남는 방식으로 국가 역시 진화해 왔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종반부에서 와타나베와 고탄다 그리고 나가시마와 오가타가 나누는 담론은 좀처럼 이해가 어려웠다. 와타나베의 말처럼 구렁이 담 넘어 가듯 궤변만 늘어놓는 것도 같았고, 어쩌면 그것이 이 사회의 진실인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도 든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가 기계의 부품으로 취급 받았듯 정보화 사회에서는 영웅도 정치인도 결국 국가 같은 커다란 시스템의 일부이며 이용당하는 부품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을 깨닫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말처럼 '그렇게 되게 되어 있기'때문이라는 사실에 순응할 뿐이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이라면... 이러한 허무주의에 빠지는 대신 "작은 목적을 위해"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렇게 되어 있는 구조에도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날도 오지 않을까?

 

 

<모던타임스>에는 유난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다.

 

능력의 사나이 와타나베, 괴짜 작가 이사카, 카리스마 넘치던 오카모토, 뼈 속까지 엔지니어인 고탄다와 오이시 등 <모던타임스>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핵심 부품이었던 이들이 있었기에 멋진 코믹 잔혹 스릴러가 탄생할 수 있었다.

 

특히 가요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그녀의 정체때문에 더욱 빠져드는 지도 모르겠다. 역시 여자는 적당히 신비주의 컨셉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요코의 비밀스러움이 책의 여운으로 남는 것과 대조적으로 사쿠라이 유카리의 정체까지 미궁에 빠진 것은 다소 아쉬웠다. 내내 그녀의 존재가 의문으로 남았는데, 결국은 와타나베처럼 나 역시 그녀가 바람이었을까 함정이었을까 궁금증을 안고 살아가게 생겼다.

 

 

 

이사카 코타로가 보여준 정보화 사회의 미래는 위험천만하다.

얼마전 연쇄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이 그 사건을 검색한 네티즌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인다고 했을 때 호기심에 기사를 검색해 봤던 나조차 덜컥 겁이 났다. 어떤 사건인지 궁금해서 한 번 찾아본 것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용의자로 몰릴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당시에는 실감나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 점만큼은 확실하게 대리 경험할 수 있었다. 책에서처럼 다가올 미래에는 인터넷 검색에도 목숨을 걸어야 할 지 모를 일이다. 

 

<모던타임스>에서 내내 잿빛 미래만 본 것 같았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안도 부부의 이야기나 마지막의 고탄다의 말 등에서 얼핏 무지개의 꼬리 정도는 본 것 같다. 따라서 그 꼬리를 잡고 놓치지 않는 끈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보화 사회, 지배할 것인가 지배 당할 것인가?

 

"당신, 용기는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