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冊 it now

골든 슬럼버 -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야!”

by 푸른바람꽃 2009. 11. 15.

 

 

 

얼핏 봐도 꽤 잘생긴 남자가 한 줄기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그러나 울고 있다기 보다는, 그 자신도 모르는 새 눈물이 흘러 넘친 듯 보였다.

그는 왜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최근 이사카 코타로의 <모던 타임스>를 읽고 나서야 <모던 타임스>의 이란성 쌍둥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골든 슬럼버>임을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이사카 코타로가 <모던 타임스>를 연재중에 있었을 때 함께 써내려간 작품이 <골든 슬럼버>였단다. 그래서 <모던 타임스>를 읽는 동안에는 내내 <골든 슬럼버>가 궁금했고, 드디어 <골든 슬럼버>를 읽기 시작했을 때는 <모던 타임스>가 자꾸 떠올랐다.

 

이유없이 쫓기는 불쌍한 남자, 아오야기

 

<골든 슬럼버>를 읽다 보면 '억울하다'는 말은 사람이 누명을 썼을 때...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 생겨난 말 같다. '억울하다'는 말만 들어도 속을 까서 뒤집어 보여주고 싶은 그 사람의 답답한 심정이 절로 이해가 되는 것처럼...

 

아오야기에게 그날이 여느 날과 달랐던 점이라고는 몇 년간 연락이 없던 대학 동창과의 반가운 만남 뿐이었다.

대학 때는 늘상 붙어 살다시피 했던 친구지만,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언제 친했냐는 듯 소식 끊고 살아가는 일이 어디 아오야기에만 해당 되는 것일까. 그랬던 친구가 문득 연락을 해 왔을 때  약속 장소로 나가며 친구를 만나는 반가운 마음 한 켠으로는 '돈 빌려달라거나, 보험 가입 해 달라거나, 보증 서달라는 것만은 절대 안돼!!'라는 자기 주문을 거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오야기의 평범한 하루는 친구 모리타를 만나면서 산산히 부서진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날의 비극은 예정된 것이었지만, 아오야기 그 자신만 몰랐던 것인지도...

 

사건 현장에 있지도 않았는데, 그는 용의자가 되어 무조건적인 경찰의 추격과 감시망에 포위된다.  

이유나 알고 쫓기는 것이라면, 조금은 덜 억울할까? 왜 하필이면 내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는 상태로 "도망쳐!"라는 친구의 말을 뒤로한 채 아오야기는 쫓아오니 달아날 뿐이다.

 

도망갈 곳은 없어! 지구 밖이면 또 모를까.

 

그러나 아오야기의 도피는 '시큐리티 포드' 시스템으로 철저히 추적당한다. 전화 도청에 위치추적은 물론이거니와 도시 치안과 국민의 안전을 빌미로 도시 전역에 설치된 CCTV는 실시간으로 아오야기의 소재를 경찰에 전송한다. 그래서 그의 도피는 결말이 뻔히 보이는 추리 소설을 보고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시큐리티 포드 시스템과 경찰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필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리타가 깨우쳐준 인간의 "습관과 신뢰"라는 것이다.

 

일촉즉발 위기의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아오야기를 구해준 것은 이 "습관과 신뢰"였다. 여기서 습관과 신뢰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은 아오야기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아오야기 주변 인물들 각자의 습관과 신뢰도 포함된다. 마치 씨줄과 날줄이 엮이듯 서로의 습관과 신뢰가 교차하면서 아오야기에게 마지막 비상구처럼 도망갈 작은 구멍을 만들어 준다.

 

애초에 그를 사건에 끌어들인 것도 절친한 친구였고, 그를 용의자로 몰고간 것도 모두 사람들이었지만 그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저 그를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을 믿는 것밖에는... 

 

조작된 사건, 날조된 뉴스, 그리고 감시당하는 사람들

 

작가도 밝혔듯이 이 책의 주요 모티브는 케네디 암살사건이었다.

희대의 살인사건을 두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실은 저 편에 감춰져 있다. 말만 많고, 형체는 희미한 그 사건을 이사카 코타로의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탄생한 것이 <골든 슬럼버>이다. 오스왈드는 곧 아오야기이고 이들은 조작된 사건의 제물로 등장한다. 분명 누군가의 이권이 개입되었을 이 사건의 주모자가 누구인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골든 슬럼버>의 쌍둥이 형제 <모던 타임스>를 먼저 읽은 덕분에 나름 유추해 볼 수는 있었다.

 

<모던 타임스>에서 역설 했듯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영웅과 정치인은 부품처럼 생산되어 이용당하는 존재다. 마찬가지로 아오야기도 그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아오야기 역시 시스템의 필요에 의해 영웅으로 만들어진 셈이고, 또 그 용도가 어느날 갑자기 테러 용의자로 변경된 것이다. 어쩌면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처음부터 아오야기를 영웅으로 만들 요량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아오야기의 의지와 무관하게 삶이 휘둘리는 모습은 국가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면서 <모던 타임스>에서 무수히 등장했던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라는 말이 증명되듯이 아오야기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여기에 미디어는 남의 집 불구경 하듯 방관자의 모습을 보인다.

입법, 행정, 사법부 다음으로 제4의 권력기구라 일컬어 지는 언론이 그 힘과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은 나 몰라라한 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고 작정한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입증되지도 않은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떠벌리고, 좀 더 자극적인 것만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 미디어의 이기심에 환멸이 느껴졌다. 처음부터 조작된 사건에 진실이란 것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거짓 사건에 날조된 뉴스까지 더해지자 더이상 아오야기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아오야기는 '시큐리티 포드'에 손발이 꽁꽁 묶여 있다.

몇 년 전, 신문 기사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평범한 사람이 출퇴근 2시간과 점심시간 1시간, 이렇게 총 3시간 동안 CCTV에 찍힌 횟수가 무려 39회에 이르렀다. 당시 우리나라에 작동중인 카메라가 어림잡아 250만대이며, 국민 19명당 1대 꼴이라고 했는데, 모르긴 해도 지금은 이보다 훨씬 증가된 수치를 보일 것이다. 아오야기뿐 아니라 이미 우리는 보이지 않는 눈에 감시받으며 살고 있다. 혼자 탄 엘리베이터에서 마음껏 거울을 들여다 보며 갖가지 표정을 짓다가도 문득 거울 귀퉁이에 비치는 카메라 렌즈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민망함을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이런 프라이버시의 위협은 10년 전쯤 윌 스미스가 주연했던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범죄 예방과 신변 안전 등을 위해 설치된 CCTV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악용되는 순간 가장 무서운 감시의 눈초리로 돌변하고 만다.

 

 

 

 

이사카 코타로의 몇몇 작품을 읽으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의 사건은 치밀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꾸며내는 작가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특히 <골든 슬럼버>에는 아오야기의 시선으로만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등장인물이 소설의 화자로 등장해 같은 사건을 다각도로 접근함으로써 사건을 지켜보는 이의 즐거움을 더한다.

 

또한 사건 전후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구성은 서술방식만큼이나 매우 신선했다. 여기에 이사코 코타로가 곳곳에 심어 놓은 사건의 복선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는 작품의 묘미는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가장 큰 재미였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모던 타임스>에서처럼 <골든 슬럼버>에도 정작 궁금했던 이노하라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황으로 볼 때는 분명 사건 배후 세력과 연관이 있을 것 같지만, 끝내 속 시원히 밝혀지진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작가 나름의 방식이라면 방식이고, 작품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사적인 문제와 철학적인 주제, 소설의 재미까지 놓치지 않는 이사카 코타로의 다음 작품이 나는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