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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it now

무지개 - 타히티와 두 남녀의 사랑이 가져다 준 설렘

by 푸른바람꽃 2009. 11. 15.

 

 

 

벌써 몇 년 전 일이 되었다.

 

친구의 생일을 맞아 평소에는 가격 부담때문에 잘 가지 않던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게 됐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나설 때쯤, 매장에서는 마침 발리 여행권이 걸린 이벤트를 진행중에 있었다.

 

소소한 경품 당첨은 몰라도 이런 행운까지 있겠나 싶었지만, 안되면 어떻냐며

그날 생일이었던 친구의 이름을 써서 경품 응모함에 넣고 우리는 돌아섰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난 어느날, 1등 발리 2인 여행권에 당첨 됐다면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단다.

이름있는 대기업의 레스토랑에서 이런 전화사기를 칠 리는 없고, 믿을 수 없는 행운에 친구와 기뻤던 것도 잠시...

당시 상황으로서는 그 여행에 나는 함께 갈 수 없었다. 끝까지 함께 가자던 친구에게 못 간다고 말하고 돌아서서

어찌나 아쉬워했던지... 그 때 한창 '발리에서 생긴일'이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친 뒤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이 후부터 남국의 여느 휴양지 이야기만 나와도 나는 반사적으로 발리부터 떠올리는 몹쓸 병에 걸리고 말았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무지개>의 배경이 타히티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타히티... 그 곳이 어디든 나는 발리랑 

비슷한 곳이겠지? 이 책을 보고 나면 내가 가지 못한 그 곳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도 품게 됐다.

 

대학 때 줄기차게 읽었던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다 보니, 그녀의 책들만 모여있던 곳에서 한참을 기웃거리던

내가 떠올랐고... 늘 사랑의 열병으로 조금씩 성장해 가던 그녀의 주인공들도 기억 저 편에서 반갑게 얼굴을 내밀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에 등장하는 '사랑'을 볼 때마다 나는 '첫사랑'의 느낌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설레지 않는 사랑이 어딨으며, 이별에 가슴 아프지 않는 사랑이 어딨겠냐만... 요시모토가 풀어놓는 사랑은

마치 처음 사랑을 할 때의 그 순수했던 열정이 그대로 묻어나오기 때문에 더욱 풋풋하고, 순순해 보인다.

 

그래서 <무지개>에 등장하는 에이코와 다카다의 사랑도 그냥 놓고 보면 불륜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을 도적적으로 판단하진 않았다.

다카다의 처지와 함께 다른 매체와 달리 책에 등장하는 불륜만큼은 조금 관대하게 바라보는 편이라 오히려 에이코와 다카다의

사랑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나를 발견했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주고 받는 펙스의 편지글에서 숨겨 두었던 그들의 마음이 너무 진하게

전해져와 나도 에이코처럼 색색의 무지개를 본 듯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무지개>는 내가 알기로는 <불륜과 남미>에 이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두 번째 여행소설이다.

여행소설이란 장르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직접 여행지에 가서 취재한 내용이 책의 말미에 함께 담겨 있어서

사진으로나마 타히티의 그림같은 풍광을 감상할 수 있었다. 누군가 파란 페인트를 엎질러 놓은 것처럼 하늘도 바다도 새파랬고,

그녀가 소개해 준 레몬빛 상어와 반갑게 인사나누면서... '신혼여행이 아니면 못 가려나...'하는 뜬금없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또한 <불륜과 남미>의 표지 그림으로 먼저 만났던 마스미 하라의 타히티 여인  그림들은 책 속의 작은 화집이라 할만큼

매혹적인 일러스트였다. 독자들에게 남긴 그녀의 메세지를 보니, 이 여행소설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될 모양이다.

<무지개>를 보고 나니 내가 건너 뛴 <불륜과 남미>도 다시 만나고 싶고, 그녀의 다음 여행지도 자못 궁금해 진다.

 

또 어떤 나라에서, 어떤 이와의 사랑으로 또 나를 설레게 할까?

그녀가 나를 이끈 타히티만큼이나 분명 매혹적인 이야기가 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