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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서른의 사랑도 어렵다.

by 푸른바람꽃 2009. 11. 15.

 

 

 

평이 좋은 영화에 눈길이 가고,

평이 좋은 책에는 손길이 간다.

 

이 책이 그랬다.

워낙 읽은 사람들의 서평이 인심좋게 넉넉하여,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때, 뻔질나게 드나들던 동네 책방에서 나의 단골 코너는 하이틴 체험수기가 모인 곳이었다.

내 또래 남학생, 여학생이 털어놓는 감동실화, 그것도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는 신파조의 그 이야기에 나는 눈물, 콧물을

연신 훔치면서 흠뻑 빠져 지냈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 쉽게 빠지고, 쉽게 질린다.

로맨스의 달달함이 유통기한을 드러내자,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책들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국내 작가들의 로맨스 소설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워낙 인터넷 연재가 일반화 되면서 유행처럼 번지던 로맨스 소설들이라 막상 읽어 보면 속 빈 강정들도 많았다.

그래서 엄선하여 평이 좋은 작품들로만 골라 읽다보니 나름 까다로운 안목이 생겨버렸고, 믿을만한 특정 작가들의 작품만

주로 섭렵해 나갔다. 그 리스트 중에 '이도우'란 작가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들고 읽으면서도,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이 책의 장르가 로맨스 소설인 줄 몰랐다. 로맨스 소설이 갖는 특유의 뻔한 요소들이 빠진 자리에 작가의 서정성과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들이 생생히 담겨 있었고, 그런 점은 오히려 여느 일반 소설의 느낌에 가까웠다. 

 

장르야 어찌 되었든 오랜만에 읽는 가슴 짠한 서른 즈음의 사랑 이야기였다.

 

근래에 읽은 책들 중에서 사랑이 스치듯 지났던 적은 많았지만, 이 책처럼 두 발 모두 사랑에 풍덩 담근 책은 없었다.

그래서 첫 장을 시작으로 덮을 때까지 단 한 번의 쉼이 있었을 뿐이다. 불처럼 타오르는 사랑도 아니었고, 가슴을 저미는

비련의 주인공도 없었지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 나오는 평범한 우리의 사랑 얘기에 외려 더 몰입도가 높았다.

 

마치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목하 열애중인 모습을 살짝 엿보는 기분.

로맨스 소설의 판타지가 아닌 실제 있을 법한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에 쉽게 공감이 됐고,

물 흘러가듯이 인물들의 감정선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었다.

 

건피디와 공작가. 이 두사람에겐 서른을 넘긴 나이테처럼 각자 사랑의 생채기도 있었다.

특히 공작가의 경우에는 그녀의 소심하고 상처받기 두려워하는 성격때문에 타인에 대한 경계심까지 더해져

늘 방어막을 치고 사람을 대하곤 한다. 그랬던 그녀를 서서히 무장해제 시키고, 그녀의 마음에 스며든 이가 건피디였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건피디가 아닌 남자들은 왜 저럴까?... 라는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됐다.

건피디 하나만으로 남자들 모두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기 보다 종종 보게 되는 남자들의 모호한 행동들에 대한

불만이라고 해야 더 옳을 것이다. 괜히 툴툴 거리며 딴지 걸기 좋아하고, 늦은 밤 함께 술 먹자 차 마시자 저녁 먹자 불러 내며,

실컷 사람 마음 다 흔들어 놓고선 한다는 얘기는 다른 여자를 지금껏 마음에 품어왔노라...는 고백이라니!! 그가 공작가에게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은 관심있는 여자에게 작업 거는 남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다정도 병이라는데, 여자를

충분히 헷갈리게 할 과한 친절과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여와 놓구선 공작가가 막상 다가섰을 때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 버린다.

그래서 되려 건피디가 먼저 고백하겠거니 기대했던 난 순간 뒷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마음 따뜻하고 무심한 척 사람 배려하는 건피디에게 공작가처럼 나도 어느새 설레며 그와 연애하는 기분에

휩싸이게 됐다. 그래서 마포대교를 건너며 공작가가 느꼈을 혼란스러움까지 고스란히 내가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공작가는 건피디에게 지금까지 왜 그런거냐고 묻고 싶고, 따지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는다.

그 때마다 내가 대신 물어봐 주고 한바탕 화라도 내고 싶었다. 왜들 이렇게 어렵게만 사랑을 하는 건지,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명쾌한 사랑을 하기란 역시나 어려운 일인지... 사랑, 참 어렵다 유행가 가사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  

 

아슬아슬 마주쳤다 다시 어긋나기를 반복하는 이들을 보며, 서른의 사랑도 별 수 없구나 싶은 생각이 스친다.

이십 대의 사랑이 열정만 가득한 그래서 아직은 설익은 사랑이라면, 서른의 사랑은 그 보다는 노련한 사랑이지 않을까

기대 했었는데... 사랑 앞에서는 나이불문, 성별불문 모두가 바보다. 건피디가 공작가에게 수시로 내뱉는 말처럼...

 

우물쭈물 망설이는 사이 버스만 떠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도 떠난다.

나이가 들면서 사랑할 기회가 줄어든다지만, 실상 사랑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찾아온 사랑을 덥썩 잡을 용기가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마음이 움직였다면, 더 이상 생각은 그만하고 용기를 낼 차례다.

그런 점에서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볼 시간 따위는 이미 불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미 상대가 고백해 왔을 때 들게 되는 첫 느낌, 그 마음. 그게 아마도 진심이지 싶다.

 

사랑의 상처를 간직한 서른 즈음의 남녀가 겪는 느림보 사랑이야기가 요즘의 성급하고 무책임한 사랑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아무리 영원한 사랑은 없다 해도 사람에 대한 '순정'만큼은 퇴색되지 않고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 믿고 싶다. 

 

항상 로맨스 소설의 해피 엔딩 결말이 해피 앤드 (Happy and)로 이어지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