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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연가 - 전주 교동에서 펼쳐지는 가을빛 사랑

by 푸른바람꽃 2009. 11. 15.

 

 

선선한 바람이 불고, 가을로 접어든 이 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남기고간 로맨스의 여운은 제법 길게 갔다.

 

사람의 빈 자리는 새 사람으로 채워야 하는 것처럼,

책을 읽고난 뒤의 허전함 역시 새로운 책으로 채우자는 생각에 후보작을 물색하던 중 나의 레이더 망에 걸린 작품은 

짙은 바다와 고운 단풍 빛깔을 닮은 예쁜 표지, 그리고 단정한 제목이 인상 깊었던 <교동연가>였다.

 

제목만 보면 시대물의 느낌이 물씬 나지만, 막상 읽어보니 '전주 교동'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현대인들의 사랑이야기였다.

책의 내용만 보자면 특별할 것 없는 그래서 심심하다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전에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었기 때문인지 건피디와 공작가의 또 다른 버전처럼 느껴지는 주인공 '태제'와 '보영'의 느릿한 사랑이야기가 좋았다.

 

특히 건피디와 공작가가 서로 다가섰다 물러서기를 반복하며 소모전을 벌일 때와 달리 <교동연가>의 주인공들은

건피디와 공작가보다 더한 사랑의 상처를 갖고 있다면 그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태제는 열 살난 아들을 둔 이혼남이고, 보영은 규방공예를 하는 서른 한 살의 옆집 아가씨였다.

이웃에 살며 얼굴 마주치는 일이 잦아지고,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서서히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 

그러나 태제의 처지가 처지이다 보니 함부로 그 마음 드러낼 수 없었고, 보영 역시 홀어머니에게 불효라 생각되는

그 사랑에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흐르는 물길은 막을 수 있어도, 흘러가는 사람 마음 막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감추려 해도 자꾸 드러나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자, 순수하고 맑은 모습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내민 손을 꼭 잡고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그 이후 그들에게 흔들림은 없었다.

   

소설의 구성요소에서 갈등의 단계가 버젓이 있고, 또 그 갈등이 소설의 클라이막스이기도 한데 이들의 이야기에는 극적인

갈등요소가 너무 없다는 게 굳이 흠이라면 흠일까. 대신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는 보영 엄마와의 갈등이 잠시 등장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충분히 이해되는 그 갈등에서조차 작가는 가족의 사랑과 연인에 대한 배려 등 따뜻함을 놓치지 않고 있다.

 

<교동연가>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러한 책 속의 온기였다.

모질고 악한 사람 하나 없이 투명하고 맑은 사람들 간의 정이 넘치는 이야기.

그래서 "그 후로도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하고 끝맺는 동화 한 편을 보는 것과 같았다.

이런 점은 로맨스 소설이 갖는 구태의연한 판타지적 요소라 할 수 있겠지만, 절세 미인과 재벌 2세 바람둥이의

흔해빠진 캐릭터보다 백번 반가운 인물들이 가득하다. 시종일관 걸쭉한 강원도 사투리를 들려주는 정선댁을 비롯해

태제의 귀여운 아들 혜찬이, 보영의 든든한 친구 주형과 잠시 두 연인에게 시련을 안겨줬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깊고

따뜻했던 보영의 어머니까지 이들이 한 땀 두 땀 정성껏 깁고 보태어 만든 색색의 조각보가 행복이란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는 자체만으로도 흐믓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전주 교동'이라는 동네가 몹시 궁금해졌다.

고풍스러운 경기전, 연꽃과 멋진 음악분수가 있다는 덕진 공원, 강을 따라 갈대숲 우거진 천변, 태제의 카페 더 스토리,

콩나물국밥이 기가 막힌다는 삼백집 등 태제와 보영의 데이트 코스를 따라 올가을에는 전주로 떠나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작가가 직접 전주를 여행하고 취재 후 집필한 작품이라 그런지 곳곳의 묘사가 마치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고, 책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가게들 역시 실제로 있는 곳을 차용했다고 하니 전주에서 보물 찾기하는 기분으로 찾아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줄 것만 같다.

 

지금 이 맘 때 가을을 배경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사랑이 추운 겨울을 이기고,

따뜻한 봄을 맞아 그 결실을 맺는 모습에 잠시 허전했던 마음이 따뜻함으로 가득채워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