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 원작 소설을 읽는 것은 영화를 보는 데 득이 될까? 실이 될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원작 소설보다 나은 영화를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나는 그 실망감을 약화시키기 위해 원작보다 영화를 먼저 보는 편이다. 영화부터 보고 원작 소설까지 읽게 되면 같은 내용이라도 더 깊게 만나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이 책의 존재도 몰랐을 것이다.
영화가 제작 단계에 있을 때부터 지켜봤던 작품인지라 우연히 원작의 존재도 재발간 되기 전부터 알게 되었다. 게다가 무협소설계에서 이름난 '야설록' 작가가 이 책의 저자임을 알았을 때는 책부터 본 것을 후회하게 되는 한이 있어도 책을 먼저 만나보고 싶어졌다. 또한 마음 한 켠에 두 주연 배우의 연기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책으로 들여다 본 '민자영'과 '무명'을 과연 연기자들이 얼마나 섬세하게 파고들었는지 지켜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사랑, 조선시대 마지막 멜로...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학창시절 국사라는 과목을 등지고 살았다 할지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명성황후' 이름은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과 얽힌 일본의 만행은 우리의 애국심과 울분, 분노를 들끓게 한다. 권력의 다툼에서 희생되었던 명성황후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들은 내용의 절반 이상은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역사적 인물로만 바라봤던 그녀에 대한 평가와 역사의 왜곡이라는 민감한 문제들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작가가 이 책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내가 이 책에서 읽어나가려고 했던 바는 국사 교과서도 아니고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의 전기도 아닌 여자 '민자영'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 이런 생각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자 비밀스러웠던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설렘이 밀려왔다.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소설은 소설일 뿐.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실제 신분제 계급사회였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는 주종관계의 사랑이 대세를 이뤘으나, 계급제도가 철폐된 지금은 경제적 계급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의 사랑이 주를 이룬다. 닳고 닳은 이런 러브스토리가 여전히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책의 소재로 사용되는 이유는 하나 뿐이다. 여전히 이런 소재에 대한 대중의 소비가 있기 때문이다.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런 사랑의 핵심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그 숭고함과 희생, 순정 등에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시련이 클수록 이들의 사랑은 더욱 견고해 지고. '불멸의 사랑' 같은 것은 이제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런 사랑을 지켜봄으로써 그래도 '영원한 사랑'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변치 않는 사랑을 꿈꾸는 이들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는 아마 10년 후 20년 후에도 분명 존재하리라...
만일 신분을 초월한 사랑에 난이도의 등급이 있다면 '무명'과 '자영'은 단연코 최고난이도에 속한다.
왕후화 호위무사의 사랑이었고, 이미 결혼한 여자와의 불륜이기도 했던 이 사랑의 결말이 해피엔딩일 확률은 제로였다. 그러나 그 제로의 확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두 사람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은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었다.
보려 하지 않아도 눈은 어느새 상대를 쫓고 있고, 만지려 하지 않아도 손은 이미 상대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는데 세상 무엇이 두렵고 겁났을까. 다만 그들에게 두려웠던 단 한 가지는 상대방의 부재, 즉 '상실'의 아픔 뿐이었을 것이다. 곁에 있을 수만 있어도 그것으로 되었다는 소박한 바람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사랑. 그래서 '무명'과 '자영'의 잔인한 운명이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책에서는 '자영'의 사랑보다 '무명'의 사랑을 좀 더 심도있게 다룬다. 저자가 남자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명'의 우직한 성품과 외양처럼 남자의 사랑에 과연 그 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에게 '자영'은 삶이고 목표이며 신앙과도 같았다. '무명'의 사랑을 보며, 나는 고등학생 때 읽은 하병무 작가의 소설 <남자의 향기>가 자꾸만 떠올랐다. '혁수'의 사랑과 '무명'의 사랑이 많이 닮은 점도 그렇지만, 주요 설정도 비슷한 면이 많았다.
한 남자의 일편단심 사랑, 그 남자를 사랑하지만 사회적 제약으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는 여자, 그 일편단심인 남자를 해바라기 하는 또 다른 여자,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보내야 하는 남자의 아픔, 유부녀가 되었어도 결코 멈출 수 없었던 사랑, 마지막으로 그녀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남자... 단편적인 내용들이지만 이것이 작품의 주요 내용들이고,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남자의 향기>가 연상될 수밖에 없을 만큼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남자의 향기>와 비슷한 내용이 많다. 그래서 그랬던 것인지 '무명'과 '자영'의 사랑에는 <남자의 향기> 때 느꼈던 만큼의 감동과 슬픔, 눈물이 없었다. 처음 보는 작품이었지만, 처음의 신선함 보다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함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불꽃처럼 나비처럼>이 갖는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창작물에서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대중들에게 어디서 본 것 같다는 기시감은 작품의 매력을 반감시키기에 충분하다. 케케묵은 사랑이야기가 생명력을 가질려면 똑같은 사랑도 색다르게 표현해내는 창의성이 가미되어야 한다. 단순히 상황과 설정만 바꿔놓고 그 내용은 별반 차이가 없다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수 없다. <불꽃처럼 나비처럼>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관심을 가질만한 '명성황후'의 비밀愛를 홍보 전략의 중심에 둬서 눈길은 끌 수 있었지만, 책으로 만난 그들의 사랑이야기 자체에는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야설록 작가의 특기를 십분 발휘한 '무명'의 액션 활극을 묘사한 장면들에서 무협소설 작가로서의 내공이 더욱 돋보였던 작품이다.
작가는 무협이라는 장르에 멜로를 넣고, 거기에 '명성황후'라는 화제의 인물을 주인공 삼음으로써 재미와 감동, 그리고 애국심까지 자극하려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중에서 무협만이 흥미로웠을 뿐 '무명'이라는 인물만 강하고 두 사람의 멜로는 약했다. 또한 책의 마지막 몇 장으로 휘몰아친 을미사변은 죽음을 눈 앞에 둔 '무명'과 '자영'의 비극적 사랑을 가장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책의 핵심인 이들의 사랑은 사건 속에 묻혀 두 세줄의 내용에 그치고, 을미사변 자체를 쫓느라 바쁘다. 이러한 점도 책을 다 읽은 후 느낀 왠지 허한 느낌에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
어쨌건 역사 왜곡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이런 작품을 창작했을 때 조금 더 과감할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이런 바람은 역사 왜곡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창의적 픽션으로 역사 소설도 인정받게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모두가 남자라고 믿고 있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신윤복'도 여자였을지 모른다는 상상까지 가능케 하는 것이 소설이다. 소설의 '허구성'이라는 이 강력한 무기를 잘만 휘두른다면, 역사를 왜곡한 소설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순수 창작물로서의 가치까지 인정받게 될 것이다. 역사 왜곡의 논란에 시달리는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정작 그들 스스로 역사적 사실이란 테두리에 갇힌 채 조금씩 바꾸고 변형한 이야기들로 대중에게 새로움을 주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비난의 화살을 대비한 방패 하나는 들고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명'과 '자영'의 부족한 멜로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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