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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 잘금 4인방의 귀환

by 푸른바람꽃 2009. 11. 15.

 

 

로맨스 소설 장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읽었던 독자라면

누구라도 손꼽아 기다렸던 작품이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일 것이다.

 

커피프린스 1호점, 바람의 화원 등 남장 여자가 유행처럼 번질 때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도 그 대열에 있었다.

금남의 공간, 성균관에 여자의 몸으로 입학한 것도 모자라 남자 기숙사에서 동거동락하게 됐으니 여주인공의 마음 고생이 이만 저만 심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 방에 기거하는 조선 최고의 남자 '선준'에게 연정을 품게 되면서 가슴 떨리는 성균관 유생시절을 보냈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갑자기 흔해져버린 남장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나, 작가가 심도 있게 당시 성균관 생활 및 과거 제도 등을 국사 교과서 버금갈 정도로 상세히 다룸으로써 차별화를 꾀했다. 게다가 조선시대 F4라고 할 수 있는 두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두 유생들의 에피소드도 탄탄한 스토리 구성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이 쯤되고 보니 퀄리티 높은 로맨스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도 나날이 높아져 갔다.

전작 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지만 부디 이런 편견조차 깨지길 바랬다. 하지만 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비교적 재미는 있었으나, 전작에는 못 미친 느낌이다.

 

가장 큰 불만은 지나친 로맨스의 부재다.

그래도 명색이 로맨스 소설인데, 과도한 애정씬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 전편보다 더 깊어져야 마땅한데도 오히려 전작에서 '선준'은 '윤희'가 남자인줄 알고 애닳아 하고, '윤희'는 '선준'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어서 안절부절 못하던 그 때의 사랑이 더 절절하다. 전작의 엔딩은 두 사람의 혼례로 마무리 되어서 한껏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을 두 사람을 예상 했건만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에서는 결혼은 결혼대로 위기에 처하고, 두 사람은 워커홀릭처럼 나랏일에 분주한 모습만 너무 자주 보인다.

 

다음으로는 주연급 조연들의 이야기가 부족했단 점이다.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에서는 이미 말했듯이 두 주인공의 로맨스는 거의 보기 힘들다. 대신 작가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재신'과 '용하'의 사생활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도 수박 겉핧기처럼 대강의 사건만 던져주고 '재신'의 새로운 인연이나 '용하'의 숨겨진 사연 등은 대충 언급하고 지나쳐 버린다. 그러다 보니 독자들은 더욱 감질날 수밖에 없다.

 

전해 듣기로는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이 이들 이야기의 끝이며, 더 이상의 후속은 없다고 한다.

이번에도 결말에서는 후속을 기대하게 하는 열린 결말들을 잔뜩 풀어놓고선, 후속이 없다니 그 궁금증은 어디서 풀어야 할 지 모르겠다.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당시 규장각의 입지와 규장각을 둘러싸고 다른 기관간의 갈등, 규장각 각신들의 역할 등에 대해서는 전작만큼이나 꽤 자세히 사료를 바탕해 서술해 주고 있어서 새로웠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앙꼬 없는 찐빵을 먹은 바람에 심술난 아이의 심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

그러니 부디 작가가 마음 고쳐먹고 다시 한 번 잘금 4인방을 제대로 부활시켜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