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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빙하기 - 남과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야...

by 푸른바람꽃 2009. 11. 15.

 

 

 

오기와라 히로시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그의 데뷔작인 <오로로 콩밭에서 붙잡아서>가 꽤 유명하지만, 내가 오기와라 히로시란 작가를 최근에야 알게 되어서 그의 이전 작품들도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책을 읽어본 독자들은 대부분 그의 작품이 재미와 유머, 의미심장한 주제를 함께 담고 있다고 했다. 이런 호평들 덕분에 오기와라 히로시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은 함께 커졌다.

 

그러나 작가도 작가지만, 이 책은 내용도 범상치 않았다. 사춘기 소년이 '크로마뇽인'을 그의 아버지라고 믿고 있단다.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그 크로마뇽인? 털이 북실북실하고 산적 같이 생겼던 그 사람 말인가? 하며, 이 황당무계하지만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이야기가 나를 네 번째 빙하기로 인도했다.

 

주인공 와타루는 남들과 다르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기 전, 표지 사진부터 좀 이상하다 생각했다. 주인공의 이름하며 배경도 모두 일본인 것 같은데 왜 표지에 홀로 서있는 소년의 뒷모습은 금발의 서양아이인지 궁금했다. 작가의 배려로 이 궁금증은 책을 읽자마자 쉽게 풀린다. "튀기"라는 이 한 단어만으로...

 

그렇다. 표지의 소년은 와타루였다.

와타루는 아버지가 없고, 미혼모의 어머니가 가족의 전부이며, 금발에 갈색눈을 가진 혼혈아였다.

태어날 때부터 와타루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평범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와타루는 그런 자신의 운명에 부응하듯 어릴 때부터 기행을 일삼는다. 그가 보이는 행동이 여느 아이들과 다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다르다는 것을 참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그것을 틀렸다고 단정짓고 병이라 생각했다.

 

아동학을 복수전공 할 때 '아동정신장애' 수업은 전공 필수과목이었다. 그 수업에서 별 세개를 그리며 시험에 꼭 출제라는 메모와 함께 밑줄 좍~ 그었던 질환이 'ADHD(주의력결핍과잉활동장애)'였다. 비록 'ADHD' 아동을 직접 관찰한 적은 없지만, 관찰 비디오로 촬영한 사례를 보자마자 이 병에 대한 설명은 더이상 필요없겠구나 싶었다. 이 병의 특징이 곧 병명과 같았으니까.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 곳에 앉아 있는 못하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을 ADHD로 진단했다. 그러나 문제는 미취학 아동들은 물론이고 저학년의 아이들 대부분이 주의력도 없고 과잉 행동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우리 애는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해요~!"라며 하소연 하는 엄마들을 심심치 않게 보아온 나로서는 'ADHD'가 얼마나 진단내리기 힘든 질환인지 실감했었다. 

 

그러나 와타루를 진단한 의사는 그를 당장 ADHD라고 진단하고 약을 처방한다.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첫 번째 '다름'을 '틀림'으로 결론 내린 경우였다. 그 의사가 와타루 엄마의 반만큼이라도 아이에게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 진단과 처방을 내렸을까 나는 의심스러웠다. 다행히 와타루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와타루를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엄마가 있었다. 현명한 엄마의 인내가 와타루의 울타리가 되어주어 그 안에서 와타루는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하면서 와타루의 고난은 유치원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심해진다. 이전까지 와타루의 인생에서 가장 큰 괴로움 아버지의 부재였다. '나에게는 목말을 태워줄 아빠대신 엄마 뿐이라는 것'이 와타루에게 비극의 시작이었다면, 초등학교에서 그가 혼혈아에 미혼모 아들이라는 이유로 또래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야 했던 것은 비극의 험난한 과정이었다. 몇 주 전 우연히 무릎팍 도사 '타블로'편을 보게 됐다. 타블로가 그의 외국에서 보냈던 학창시절을 이야기 하면서 했던 말 중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판단조차 내리지 못하므로 더 잔인하고 악마같다고 했었다. 그말에 나도 동감한다. 와타루도 동감했을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로 '다름'을 '틀림'으로 결론 내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애들이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를 이해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와타루의 이웃들 역시 와타루를 괴롭히던 애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혼모에 혼혈아를 낳은 와타루의 엄마는 그 마을에서 주홍글씨를 새긴 부도덕한 여자의 표상이었고, 그녀의 아들 와타루도 이유없이 도둑 누명을 써야했었다. 이것은 애나 어른이나 '다름'과 '틀림'의 혼돈 속에 살아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어능력검사에도 곧잘 출제되고 있는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 그러나 이런 이론적인 이해 말고, 가슴으로 이 둘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매도하지 말아야 함을 와타루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특별한 성장기를 보냈던 와타루에게 소울메이트라 할 수 있는 '사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내가 와타루에게 줄 수 없었던 위로를 '사치'가 대신해 주었고, 그런 와타루와 사치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 우정, 사랑... 무엇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는 이 둘의 깊은 교감이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와타루와 사치에 비하면 나는 행운아였다.

동물원이나 놀이공원에 갈 때마다 으레 목말을 태워주었던 아빠가 있었고, 아빠는 가끔 술은 즐기시지만 담배는 오빠가 태어날 때 바로 끊으셨다. 그래서 와타루처럼 가슴 한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있고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난다는 그 공허함과 사치처럼 아빠가 차라리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분노, 원망을 그들과 똑같이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겠지... 나라도 그럴꺼야라는 동감을 표하며 뒤돌아서서 그들과 다른 나의 평범함에 감사하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내 이기심일까? 

 

누구보다 치열한 사춘기를 보내며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 두 아이들을 보며 그래도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마치 두 아이의 엄마라도 된 기분이 들만큼... 결국 와타루의 뻥 뚫린 구멍을 메워준 것은 진짜의 허울을 덮어쓴 '가짜' 조각이 아닌 '가짜'처럼 유리관 속에 누워있던 그의 마음 속 '진짜' 아버지였다. 와타루의 기상천외한 발상을 쉽게 따라갈 수 없어서 뒤처지기도 했고, 유독 대화보다 늘 혼자였던 와타루의 생각이 서술된 부분이 많아 읽는 속도도 다른 책에 비해 더뎠다. 그래서 읽는 동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 마냥  자꾸 조급해 했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한 계단씩 꼭꼭 밟고 올랐기에 와타루의 여행의 끝자락까지 무사히 함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 시베리아 설원 한복판에서 와타루처럼 '나'라는 존재의 유일무이함, 세상에 평범한 사람도 평범한 삶도 없음을 누구나 특별한 존재라는 불변의 진리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