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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게임 - 리얼 서바이벌 게임의 극한을 보다!

by 푸른바람꽃 2009. 11. 30.
지은이
출판사
북폴리오
나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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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요즘 방영되고 있는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의 특징을 가능한 짧게 요약해 보라 한다면, 난 망설이지 않고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답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예능 프로그램은 몇 번의 진화를 거쳐 지금의 "리얼"이란 형태에 이르렀다. 이제는 너도 나도 프로그램 앞에 "리얼"이란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 그렇다면 이 치열한 "리얼 버라이어티"의 경쟁에서 승자가 되는 최고의 전략이 뭘까?내 생각에는 "누가 더 진짜 같은가?"에 따라 승패가 나뉘는 것 같다. 

 

거짓된 웃음이 넘쳐나던 쇼, 오락, 즉 예능의 영역에서 시청자들이 원한 것은 '예능의 다큐화'였다. 만들어진 웃음에 지루해진 시청자들은 이제 정반대로 가공되지 않은 웃음을 원하게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스타들의 가감없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 볼 수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사람들의 관음증적 본능을 자극했다. 그 와중에 적당히 노출되는 스타의 사생활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 로맨스 등은 엿보는 쾌락에 재미까지 안겨 주었다. 최고의 신부감 찾기, 가상 결혼, 남녀 동거, 여행, 농촌 체험, 각종 미션에 도전하기 등  갈수록 "리얼 버라이어티"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의문이 들던 즈음, <헝거 게임>은 마치 이런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극한을 보여주듯 잔인한 서바이벌 게임 한 편을 말그대로 리얼하게 보여준다. 쇼보다 더 재밌는 쇼의 뒷 이야기까지 덤으로 얹어서 말이다.

 

먼 미래, 북미 대륙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판엠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세워 졌다. 초창기 판엠은 캐피톨이라는 수도와 13개의 지역구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나 캐피톨 지역으로 부의 집중화가 이뤄지면서 상대적 불평등에 시달리던 13개 구역은 반란을 일으켰고, 결과는 당연히 앞선 기술과 전투력을 가진 캐피톨의 승리였다. 본전도 못 찾은 이 반란으로 1~12구역은 캐피톨의 식민지가 됐고, 13구역은 폐허로 변했다. 그리고 문제의 "헝거게임"이 생겼다. 반란의 대가로 매년 1~12구역에서는 10대 소년과 소녀가 각 1명씩 추첨으로 선정된다. 이렇게 무작위로 뽑힌 총 24명의 아이들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야외경기장에 갇힌 채 최종 1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목숨을 건 리얼 서바이벌 게임을 벌여야 한다. 맨 몸으로 경기장에 던져진 아이들이 게임에서 사용할 물건이 담긴 배낭을 획득하는 것부터가 이 피비린내 나는 "헝거게임"의 시작이다.  

  

각 구역에서 아이들을 데려가 서로 죽고 죽이게 하고,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 비해 얼마나 무력한지, 다시 한 번 반란을 일으켰을 때 우리가 살아남을 확률이 그 얼마나 희박한지 일깨워주는 캐피톨의 방식이다.    p.22

 

혹시라도 이 서평으로 인해 <헝거게임>을 읽지 않은 사람들의 극적 재미와 긴장감이 반감되는 것은 원치 않으므로 책의 줄거리에 대한 언급은 여기까지 하겠다. 다만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책의 표지에 적힌 '스티븐 킹'과 '스테프니 메이어'의 극찬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헝거게임"의 재물로 던져진 아이들의 목숨을 건 사투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동시에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특히 매사에 솔직하고 당당하며 인간미가 넘치는 여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은 "헝거게임"을 관전하는 판엠의 국민들과 독자를 단숨에 사로잡는다.

 

이 게임에 참가한 캣니스는 죽음의 공포와 맞서며 "먼저 죽여야 내가 산다"는 생존의 법칙에 자신을 단련시켜야 했다. 자신을 제외한 23명이 모두 죽이고 싶은 원수나 흉악범들이라면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졌을까? 아마도 작가는 캣니스를 제외한 23명의 캐릭터를 설정하는데도 꽤 고심했을 것 같다. 단 1명만 살아남아야 게임이 끝나는 상황 속에서 그 캐릭터들과 캣니스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도 이 책의 관전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헝거게임>을 읽으면서 섣부른 예측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캣니스가 생중계 해주는 현재형 그대로 게임에 동참할 때 이 책을 가장 재밌게 읽을 수 있으며, 책도 그런 독자의 기대에 부응해 다양한 변수와 놀라운 장치들을 준비해 두었다. 그것도 시사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함께 내포하고서......

 

현대사회의 경제적 계급화가 가속화 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점차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따라서 미래 국가 판엠의 모습은 우리의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계급은 극도로 부유한 지배층과 극도로 빈곤한 피지배층으로 나눠져 있고, 최첨단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것은 가진 자들의 특권인 판엠의 실상이 그리 낯설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사람은 원시 시대의 수렵, 채집 생활과 다를 바 없는 퇴보된 문명 속에서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이처럼 <헝거게임>은 미래 국가 판엠의 캐피톨과 12개 구역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지나칠 정도로 넘치는 "헝거게임"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병폐를 말하고 있다. 적자 생존의 법칙, 빈익빈 부익부, 생명 경시, 인간을 도구화 하는 문제 등을 드러내지 않고 글자와 글자 사이에 교묘히 숨겨 두었다. 일부러 가르치려 하기 보다 아주 재밌는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를 인식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제74회 "헝거게임"도 마지막 생존자를 남기고 종료됐다.

총 3부작인 이 작품의 2부는 <캣칭 파이어>란 제목으로 내년 초 출간된다고 한다. 벌써 기다려지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헝거게임>을 이미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리라! 역자의 말에서도 그렇고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헝거게임"의 기본 내용때문에 영화 베틀로얄을 떠올렸다. 그러나 "헝거게임"과 베틀로얄의 공통점이라면 '적자 생존'의 원리가 룰이라는 것이 전부다. 책을 읽으며 베틀로얄과 비슷하다는 생각은 파고들 틈조차 없었으니 내용의 식상함에 대한 염려는 순전히 기우였다.

 

다음편의 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싫어서 완결 되지 않은 만화책을 보는 것만큼이나 완간되지 않은 시리즈물을 읽는 것도 피하는 편이다. 그러나 <헝거게임>은 충분히 기다릴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해리포터 시리즈 외에 이렇게 출간을 기다리게 된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또 한 살 더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시간을 붙잡고만 싶었는데, <헝거게임>시리즈의 남은  두 편에 대한 기대감때문에라도 서둘러 2010년을 맞이하고 싶은 심정이다.

 

과연 이 게임은 정말 끝난 것일까?

살인게임은 끝났을 지 몰라도 "헝거게임"의 진짜 쇼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