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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금서 - 한국(韓國)의 고대사를 다시 쓰다

by 푸른바람꽃 2009. 12. 4.
지은이
출판사
새움
나의 평가
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

김진명 작가의 작품은 꽤나 오랜만에 읽게 됐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뒤, 한 때는 줄기차게 그의 책을 탐독했었지만 연이어 출간되는 책마다 소재의 차이만 있을 뿐 주제는 일맥상통하여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 같다. 그의 책에는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고, 그래서  읽고 나면 민족의 자긍심과 외세에 대한 분노가 동시에 일었다. <천년의 금서>를 읽기 전, 그동안 내가 읽지 못한 김진명 작가의 작품을 훑어 보던 중 그의 작품에도 변화가 찾아왔음을 알게 됐다. 기존에 일본과 우리 역사의 관계를 파헤쳤던 것과 달리 이젠 중국과 우리 역사의 관계를 고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신작 <천년의 금서> 역시 그 연장선 상에 있다.

 

책을 처음 폈을 때 나도 모르게 책장을 손으로 슥슥 문질렀다. <천년의 금서>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책의 내지 사방에도 빈티지 느낌이 나도록 약간의 얼룩을 함께 인쇄해 놓은 줄도 모르고 나는 뭐가 묻었나 싶어 직접 만져본 것이다. 혼자 속은 느낌에 멋쩍게 웃고난 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기본 전개 방식은 기존의 김진명 작가가 고수해 온 방식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불분명한 의문의 사망 사건이 발생했고, 그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 반장이 피해자의 장례식장에서 주인공을 우연히 만나면서 주인공이 이 사건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다. 반장이 용의자로 의심했던 주인공 '정서'는 사실 피해자의 친구였고, 피해자 '미진'과 '정서' 그리고 '한은원'이라는 인물까지 세 사람이 대학시절 자주 어울렸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은원'이 사건의 원인이라면, '미진'은 사건의 결과이고, '정서'는 그 사건을 풀어나가는 인물이다.

 

<천년의 금서>에서 벌어진 어느 여교수의 죽음 뒤에는 '은원'이 추적 중이던 '한(韓)'의 정체가 숨어 있었다.

대한제국, 대한민국, 한국, 그리고 성씨 한... 이 모든 '한'의 유래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던 '은원'이 점차 위험한 사실에 접근해 갈수록 그 사실이 밝혀지길 꺼리는 세력이 위협을 가해 온다. 그 과정을 '정서'가 가히 놀라운 연상력과 통찰력, 추리력을 발휘해 가며 뒤쫓는다. 하지만 내용의 재미와는 별개로 '정서'가 경찰에서도 손을 뗀 사건에 혼자 뛰어들어 사건을 해결해 간다는 설정이 조금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거의 분권으로 나눠졌던 그의 전작과 다르게 이번 작품은 단권에 분량도 많지 않아서 내용은 쫓기듯이 전개되고, 그 깊이도 얕아진 것 같다. 그래서 <천년의 금서>라는 책이 전체적으로 주는 느낌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주마간산(走馬看山)! 이 사자성어로 귀결됐다.

 

짐작컨대 내용에 깊이가 없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 중에는 이 내용을 뒷받침 할만한 자료가 부족했기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책의 본문에서도 등장하듯 그들이 알아내고자 하는 '한(韓)'의 기록은 극히 드물다. 그 희귀 자료로 책의 분량 채우기에만 급급했다면 사실보다 허구의 비중이 자연히 더 커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쓰여진 역사소설들은 역사 왜곡 논란에 시달리며 역사학자들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진명 작가는 허구보다는 진실에 가까운 사실에 더 초점을 맞추어 이 책을 썼다. 그동안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자는 주제 의식이 깃든 작품을 써오던 그였으므로 그의 이런 선택은 당연한 것이다. 그가 '정서'와 '은원'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한(韓)'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는 분명 흥미롭다. 부족한 자료를 가지고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 선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고대사의 근간을 뒤흔들만 한 이야기를 뒷받침하기에는 뿌리가 약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워낙 흥미로운 소재라서 그것이 사실로 밝혀져 대한민국 국사 교과서가 고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더 튼튼한 작품으로 만나고 싶은 욕심까지 버리기는 힘들었다.

 

한편,  <천년의 금서>에서 이야기 하고자 했던 바는 '한(韓)'의 유래가 전부는 아니었다. 이 책은 마치 나를 꾸짖고, 반성할 기회를 주는 것처럼  우리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책 속에 등장했던 국사편찬위원회의 '박일기' 교수와 '정서'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왜 '대한민국'인지, 그 속에 들어 있는 '한'이라는 글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있고 나아가 그 문제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역사란 게 역사학자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무엇보다 은원이 하고자 하는 일은 왜 우리나라가 한국인지,

그 한이라는 글자가 어디서 왔는지를 밝히는 한국인 모두의 일이었다.   (p.178)

 

작가는 이렇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라도 한국의 역사에 부디 관심을 가져달라고 외치고 있다. 핵 에너지를 연구하는 '정서'가 이 책의 주인공이 되어 '한'의 유래를 밝히는 일에 앞장서게 된 설정도 이러한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그동안 독도 문제와 일본 교과서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까지 나는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내 것이니까 주변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굴어도 내 것은 영원히 내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결과적으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 영토까지 다른 나라에 빼앗길 위험에 몰아넣은 것이다. 몇 년 전 한 이동통신사의 공익광고 중 이런 것이 있었다. 이 광고를 처음 봤을 때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잊고 살았다.

 

 

 

고구려 좀 빌릴까요?

책 한권이라면, 이동전화 한 통이라면,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5천년의 역사를 통째로 빌려 줄 순 없겠지요.

고구려사는 우리의 자존심.  마음에서 잊혀지면 역사도 잊혀집니다.

역사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뜻 깊은 배려.

당신의 작은 관심이 우리의 역사 고구려를 지켜 냅니다.

KTF적인 생각은 관심이다
Have a good time! KTF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한(韓)'의 유래라는 흥미로운 내용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역사이지 역사학자들만의 역사는 아니지 않는가! 우리의 것은 우리가 아끼고 지켜줘야 영원히 우리의 것으로 남을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한 일이지만, 그들이 쓸데없이 시간과 돈, 인력을 낭비해 가며 허무맹랑한 일에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총과 칼을 든 전쟁만이 전쟁은 아니라는 것! 미래에는 문화 전쟁이 더욱 치열해 질 것이고, 그 전쟁에서 우리가 문화 식민지의 굴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에 대한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기다.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김진명 작가는 내게 '대한민국', '한국인'이라는 뜨거운 화두를 던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