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인 더 헤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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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하는 새들의 고향...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 노래를 나는 응원가로 자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운동회나 단합대회 등 응원이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치곤 했었다. 이 노래가 아니었다면 나는 독도의 위치라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을까... 독도의 지리적, 역사적 내용을 주요 가사로 하고 있는 이 곡의 후렴구는 같은 구절이 반복된다.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우리땅!" 그런데 문득 이 마지막 소절을 읊조리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가사에 등장하는 그 누군가는 아마도 이 노래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왔다는 것!! 그래서 서둘러 이 노래가 언제 작곡되어 불려졌는지 알아본 결과 그 연도가 1982년이었다. 꽤 오래된 노래이고, 무수히 반복해 불러왔었지만 한 번도 이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독도 인 더 헤이그>를 읽은 영향인 것 같다. <독도 인 더 헤이그>는 독도를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처음 알게 된 '결정적 시점'이라고 불리는 분쟁의 시발점은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 점을 알고난 후라서 그런지 익히 알던 노래의 가사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독도의 영유권 분쟁에서 결정적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이 결정적 시점이 정해지면 그 이후 발생한 사건들은 판결에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결정적 시점을 가능한 우리의 주장에 유리하고, 상대국에게 불리하도록 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독도를 놓고 일본과 분쟁을 일으킨 것이 고작 십 수년 전의 비교적 최근 사건으로 인식해 왔었다. 그래서 <독도 인 더 헤이그>를 통해 알게 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뿌리가 생각보다 깊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랫말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최소한 이 노래가 나온 1982년 전부터 이미 일본은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우겨왔는데, 우리는 이 노래를 앵무새처럼 따라 부르기만 했을 뿐 실질적으로 독도 지킴이가 되기 위한 노력은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일본은 잊을만 하면 공식 혹은 비공식적 자리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르며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는데 앞장 서고 있다. 그리고 독도는 어느새 '리앙쿠르 록스'로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독도에는 우리의 행양경찰이 지키고 있고, 엄연히 주민도 살고 있건만 세계 속의 독도는 '주인 없는 암석'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로 표기할 것을 주장하기 보다 '리앙쿠르 록스'로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여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전쟁 없이 우리의 영토를 빼앗으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 국민들은 <독도 인 더 헤이그>에서처럼 독도 영유권 재판이 실제로 일어날까봐 걱정하고 있다. 재판을 통해 영유권을 분명히 하는 문제는 당당하게 국제 사회에서 우리 땅으로 인정받는 방법이긴 하지만, 정말 만에 하나라도 재판의 결과가 잘못될 경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재판이란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독도 인 더 헤이그>는 일본측의 준비 자료와 반론들을 통해 자세히 보여준다.
이 책은 일본의 음모로 우리나라가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르기로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되면서 일어난 재판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보다 더욱 흥미진진한 것은 역사 추리소설을 방불케 하는 '가락국기'의 정체를 찾는 과정이었다. '구지가'가 실린 것으로 유명한 '가락국기'에 이미 오래 전부터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확실시 하는 증거가 있다고 믿고, 주인공들은 사라진 가락국기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막으려는 일본측의 방해공작과 역사적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 등은 김진명 작가의 소설과도 흡사하다. 역사학이 아닌 법학을 전공하고 현직 판사로 활동중인 저자가 쓴 책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그 내용은 치밀하다. 대부분이 한국과 일본의 실재 사료를 바탕으로 추리하고 해석한 내용들이라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익히 알고 있겠지만, '가락국기'는 역사적 기록에 일부만 남아 있을 뿐 전해지지 않는 책이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 속에 정체를 드러낸 '가락국기'에는 가야 왕조의 전설과 함께 일본 고대사를 바꿔버릴만큼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실이 아닐지언정 그 내용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언급되는 유물과 유적들만 봐도 저자가 이 책을 쓰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가야와 일본의 고대사와의 관계는 매우 신빙성 있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처음 시작은 독도 분쟁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독도 문제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가야'라는 나라를 주목하고 있다. 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에만 주목하고 '가야'는 신라에 멸망한 작은 나라 로 취급했었는데 우리가 무관심했던만큼 그 나라가 감추고 있는 이야기도 무궁무진할 것만 같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가야의 비밀 결사조직이었던 복야회의 상징이 왜 거북이였는지도 대강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은 나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지 않은 다른 이들도 모두 결말이 궁금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말은 꿈보다는 현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그 결말도 결말이지만, 다른 사건의 결말 역시 흐지부지한 느낌이 없지 않다. 섣부르게 결론 지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고, 당장에 행복한 결말이 비현실적일 것 같긴 하다. 독도 영유권 재판을 소재로 한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이 가상이 악몽같은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독도'에 대한 관심과 홍보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책에서처럼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기 위해 일본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적당한 때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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