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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분 - 한 소년의 절망이 초래한 비극의 시간

by 푸른바람꽃 2010. 1. 16.

19분. 1

저자 조디 피콜트  역자 곽영미  원저자 Picoult, Jodi  
출판사 이레   발간일 2009.12.21
책소개 그저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한 소년의 손에서 총이 발사되었다! 2009년 '뉴햄프셔 플럼상' 수...

 

나는 작년 <마이 시스터즈 키퍼:쌍둥이별>이란 작품을 통해 이 책의 저자 조디 피콜트를 처음 알게 됐다. 그러나 그 작품은 책이 아닌 영화로 접했기때문에 그녀의 작품을 정식으로 만나는 것은 <19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논란의 여지가 충분한 문제를 소설의 소재로 사용함에 있어 주저하지 않았다.  

 

평범한 어느 날 아침, 미국의 한 조용하고 작은 마을의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 현장에서 단 19분만에 열 명이 죽었고, 열 아홉명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으며,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됐다. 사건의 범인은 놀랍게도 이 학교에 재학중인 피터 호턴이었다.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고, 주근깨 있는 하얀 얼굴에 안경까지 쓴... 한 마디로 말해 이 사건의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일 법한 이 소년이 이런 무시무시한 사건의 단독 범인으로 현장에서 검거된다. 그가 총을 쏘는 모습을 본 목격자만 해도 수 백 명에 이르며, 카페테리아에 설치돼 있던 CCTV에도 총을 난사하고 있는 피터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모든 증거와 증인은 피터 호턴을 범인으로 지목했고, 피터 역시 범죄를 자백한 마당에 피터가 받게 될 재판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의 사법제도 특성상 변호인은 피터의 무죄를 주장하며 피터가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중심으로 피터의 범행을 옹호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해 나간다. 대체 무엇이 평범한 아이를 총기난사범으로 만들었는지, 왜 소년은 이토록 분노 했는지 이야기는 범행 시점의 전과 후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구성방식을 통해 피터는 물론이며, 현재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과거까지 함께 보여준다.

 

피터의 학교생활은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이 전부였다. 그 시작점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 피터 나이는 고작 다섯살이었다. 유치원이란 곳에 처음 가는 설렘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꼬마, 피터. 그러나 슈퍼맨이 그려진 도시락을 품에 안고 노란색 버스에 오른 그 순간, 피터의 인생이 수렁에 빠지기 시작했음을 피터와 그의 부모는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왜 자신이 괴롭힘과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피터는 알 수 없었다. 몇 번은 맞서 싸우기도 하고, 부모님과 선생님께 도움도 요청했지만 그럴수록 더 큰 보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피터는 매일 당하고 또 당해야 했다. 그러한 고통이 자그마치 10년 이상 지속됐다면... 그나마 남아 있던 실낱같던 희망마저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면... 과연 피터의 인생에서 남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과거를 짚어 갈수록 피터의 고통과 절망, 분노와 좌절은 끝도 없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며 나는 피터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한 때나마 피터의 유일한 친구로 곁을 지키던 소녀 조지의 입장이 되었다.   

 

조지는 사건 현장에서 피터 곁에 쓰러진 채 발견되었음에도 그녀의 부상은 경미한 수준이었다. 중요한 목격자이자 현장 증인이지만 조지는 충격으로 사건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사건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책에서는 의외로 조지의 기억 찾기에 매달리지 않는다. 자기방어기제로 인한 기억상실인 점을 저자도 헤아리고 배려하려는 듯 일단 조지의 기억은 시간 속에 묻어두고, 피터와 조지의 과거만 조금씩 열어 보인다. 사건의 범인은 피터 호턴이지만 이 사건에는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조디 피콜트는 이것을 퍼즐 조각들을 끼워 맞추듯이 긴밀하게 엮고 있다.    

 

하루 아침에 총기난사범이 된 아들을 마주해야 하는 부모, 피터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심어준 무리들, 하필이면 그날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된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들, 사건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 하는 형사, 증거가 명백한 사건의 범인을 변호해야 하는 변호인 등 <19분>은 피터 호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책의 핵심은 피터가 저지른 끔찍한 19분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그 19분을 뺀 나머지 9백만분의 피터 인생을 보여주었다.

 

가끔 뉴스에서 또래의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10대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한다. 그 때도 소위 '왕따', '은따'라고 불리는 집단 따돌림 현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상처 받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교든 사회든 조직체 내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하나의 원이 존재하고 있다. 이 원을 흔히 '이너 서클(inner circle)'이라고 부른다. 무리를 주도하는 그룹인 '이너서클'에 속함으로써 우월의식을 갖게 되며, 안도감을 얻는다. 그리고 언제 원 밖으로 내처질 지 모르는 불안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끝내 그 원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던 피터와 원 밖에서 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늘 불안에 시달렸던 조지의 모습은 단지 10대 아이들 사이의 권력관계를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이너서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밖에도 피터의 부모 루이스와 레이시, 그리고 조지의 엄마 알렉스를 보면서 부모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과연 올바른 양육 방식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삐뚤어진 자식에 대한 책임의 일부는 그 부모에게 있음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최선이 과연 아이를 위한 최선인지 자신들의 양육관에 맞춰진 최선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부모됨에 대한 교육이나 연수를 받고 부모가 되는 사람은 드물다. 모두 뜨거운 핏덩이를 안아 든 순간 저절로 부모가 되었고, 그 낯선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아이를 바르게 키우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낳은 아이라고 해서 그 아이의 전부를 안다고 자만해선 안 된다. 특히 10대의 아이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 숨기는데 더욱 능숙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냄새나는 쓰레기를 당장 내 눈 앞에서 치웠다고 해서 그 쓰레기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 이것은 아이들을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이끌어 줘야 하는 우리 어른들의 숙제다.